비속한 주체의 파격적 도발
제니퍼, 나는 제니퍼가 아닙니다
요약하자면 『부당당 부당시』의 1부에서 4부까지는 “제니퍼”라 불리거나 “제니퍼라고 불러” 주기를 요청하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전반을 이룬다. 시를 내면적 고백과 세상을 향한 관심으로 단순히 이분화할 때, 서유 시인이 응시하는 대상은 분명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당시’라는 단일한 제목의 시편들로만 묶인 5부는 4부까지와는 달리 주로 자기 고백적인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널드는 “시는 인생에 대한 비평이다”라고 단언한다. 시란 사회나 세계에 대한 인식을 표출하는 외에도 개인의 정서와 체험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파악하는 표현 방식인 것이다. 이처럼 사적이면서 내면적이라는 특징 외에도 ‘호명’에 대한 시인의 인식과 태도가 다소 차이를 보이는 데가 5부이기도 하다. 1부에서 4부까지의 ‘이름 불러 주기’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제니퍼라는 이름이 “너무 개 같고 자본주의 냄새”가 난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타자에 호명된 존재로서의 ‘제니퍼’. 본명이 안나 푸틴인 이들 모두가 다시 ‘제니퍼’로 태어나는 세상이다. 이는 “주체는 타자가 불러 준 이름 속에 있다”란 루이 알튀세르의 구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결과적으로 ‘부당시’에서의 부당함은 ‘제니퍼’라는 이름을 강요하는 세상의 부당함을 드러낸다. 앞서의 호명이 자본주의적 타자가 강제하는 이름이라면, 후자의 호명은 제니퍼가 아닌 주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들이다. 해서 개와 고양이, 아이와 코끼리와 유령은 제니퍼라 불리기를 거부하는 주체들의 선택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세상이 폭력적으로 붙여 준 이름이리라. 자본주의적 타자에 의한, 자본주의적 타자를 위한, 자본주의적 타자의 제니퍼들을 향해 시인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우리는 모두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하나, 둘, 셋, 이제 눈을”(「부당시」 4) 뜨라고 요청한다. 부디 거울에 비친 당신
이 제니퍼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