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명의 첫 페이지가 막 시작되는 순간”
김선욱은 〈퀴르 인간〉을 통해 SF 장르로의 도전을 시도했다. 실제로 존재할 법한 가족을 그린 등단작과 달리 근미래를 그린 이번 작품은,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집요하고 끈질기게 관찰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을 ‘드림퀘스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짚어낸다. 2020년 시인으로 등단해 작년 첫 소설집을 낸 심민아의 〈이상하고 평범하며, 평범하고 이상한〉은 제목처럼 ‘이상하지만 평범한’ 아빠를 둔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를 그렸다. 돌아가신 아빠의 소유 부동산을 정리하다 9999년 1월 기한의 아파트 입주권을 발견한 자매가 그곳을 찾아가며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 자매의 여정에는 어떤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편 2021년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동시에 등단하며 화제를 모았던 윤치규는 〈시리얼 신춘 킬러〉에서 신춘문예 시스템에 대한 고찰을 드러낸다. 그의 재치 있고 시니컬한 문장으로 등단하는 과정 속 표절과 예술의 관계를 바라본다. 2020년 등단 이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리는 〈여름 인어〉에서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의 ‘반려 인어’를 맡게 된 주인공이 할머니가 남긴 유산에 관한 미스터리를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숨죽이며 지켜보게 한다. 지영의 〈어떤 밤, 춤을 추던〉에서는 습하고 흐릿한 이국적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실 앞에 놓인 인간의 거대한 슬픔과 그것을 이겨내는 모습을 섬세하고 담담히 이야기하며 연대와 위로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세 명의 시인이 만들어내는 각자의 세계도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박다래는 가장 일상적인 장면에서부터 먼 곳에 있는 이미지를 불러와 상충시킨다. 1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면면을 바라보기도 한다. 여덟 편의 시를 읽으며 그 어긋남의 순간에 집중해주기를 바란다. 2021년 《새의 이름은 영원히 모른 채》로 독자들에게 먼저 이름을 알린 원성은의 시 세계에는 시인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는 타자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시인은 타자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찬찬히 그 자체를 관찰한다. 그 거리를 가늠하고 관계 속을 유영하면서도 대상을 섣불리 단정 지으려 하지 않는 태도가 여덟 편의 시 속에서 돋보인다. 차유오가 그려내는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나에게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으로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휴의 형태〉를 비롯해 표제작 〈투명한 몸〉 등 여덟 편의 시 속에서 등장하는 ‘해파리’, ‘유령’, ‘사람 같은 인형’ 등의 이미지는 나와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나’와 ‘내’가 분리되는 유체 이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며, 타자와 나의 경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내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방식
《어제를 기억하는 여덟 개의 방식》에는 신작 소설과 시 외에도 8인의 작가들이 직접 기획하고 써 내려간 다양한 글이 함께 수록된다. 문학잡지 《Axt》와 연계하여 구성된 이 지면은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과 시 외에 다양한 작업과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장 메인이 되는 cover story에는 서로의 글을 읽고 나눈 대화가 실린다. 서로의 가장 첫 번째 독자가 되어 감상을 이야기하는 한편, 작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가득 실린다. 독자들에게도 이런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열심히 읽고 쓰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온 책은 무엇일까. review에서는 여덟 명의 작가들이 현재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한다. 각각의 책이 어떤 이유로 선택되었는지 책을 읽으며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photocopies에서는 젊은 작가의 일상 속 장면이 사진과 함께 짧은 글로 수록된다. 이번 주제는 ‘시간’과 ‘공간’이다. 작가들이 감각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며 독자들의 시공간도 한층 넓어지리라 생각한다.
조금 더 내밀한 기억을 풀어낸 지면도 마련되어 있다. 작업과 일상을 기록한 자전에세이 biography에는 여덟 개의 서로 다른 ‘어제’를 발견할 수 있다. 대면과 비대면, 공간과 차원을 넘어 기록된 monotype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각자의 이야기를 눌러 담았다. 작가들이 어제를 기억하고 기록한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은 또 다른 내일을 그리고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