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의 위대함은 우승 트로피 개수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의 테니스에는 다른 선수의 경기에서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감동이 있고,
그 감동은 온전히 땀과 노력, 투지와 정신력이 결합된 산물이다
그동안 테니스 역사를 빛낸 훌륭한 챔피언들은 많았다. 4대 메이저 대회를 한 해에 모두 우승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로드 레이버, 윔블던 단식을 9차례나 평정한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그리고 테니스의 품격을 한 차원 끌어올린 교과서적 마에스트로 로저 페더러. 또 테니스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지금도 최고, 최다 기록 제조에 여념이 없는 완벽함의 상징, 레코드 브레이커 노박 조코비치. 그들의 재능과 탁월함은 경외의 감탄의 대상이지만, 나달에게는 그보다 훨씬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한마디로 나달은 감동이다. 『라파엘 나달 - 선수 14』는 그의 테니스 인생을 전부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 그거 어떤 선수였는지, 왜 전 세계의 테니스팬들이 그에게 열광하고 찬사와 사랑을 보냈는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브레인스토어 편집부는 나달을 주인공으로 선수 시리즈 신작을 함께 만들 저자로 김기범 기자를 선택했다. 나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는 테니스 마니아나 기자가 적잖이 있겠지만, 나달을 넘어 테니스 전반에 대해 대중에게 쉽고 재밌게 전달해줄 수 있는 메신저로 김기범 기자 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가 갖고 있는 테니스에 대한 애정과 지식, 그리고 동호인 선수로서, 취재 기자로서, 중계방송 해설자로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한 모든 테니스 안팎의 인사이트가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랐다.
김기범 저자는 나달이 얼마나 훌륭하고 우수한 선수였는지 그가 이룬 결과들에 집중해서 글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수행해내기까지의 준비, 노력,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이 라파엘 나달이고, 가장 큰 매개가 되는 것은 테니스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뭔가를 느끼고 깨달아 나달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마음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라파엘 나달 - 선수 14』가 됐다.
사실 과거 나달은 ‘최고의 선수’라기보다는 ‘2인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선수로서의 업적과 인기, 두 측면에서 모두 그랬다. 페더러의 아성은 넘볼 수 없는 것처럼 높아 보였다. 하지만 나달은 2017 년부터 5년간 무려 8번의 메이저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만년 2인자라는 대중에게 각인된 인상을 지워가며 아예 허상으로 만들어버렸다. 2017 년 이후의 메이저 우승 타이틀 성적만 놓고 따져본다면 페더러(3회)보다 훨씬 무려 2배 이상 많다. 8번의 메이저 타이틀도 밸런스가 비교적 잘 잡혀 있어 윔블던을 제외하고 호주 오픈 1회, 프랑스 오픈 5회, US 오픈 1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스포츠는 결국 승자를 위한 무대다. 1등을 기억한다. 커리어 후반부, 말년에 감동적이고 기념비적인 승리를 계속 추가해나간 나달이 이제는 어느덧 페더러를 추월했다는 느낌을 준다. 20대 시절의 나달은 엄밀히 말하면, 테니스 세계에서 황제 페더러에 대한 ‘안티테제’에 가까운 역할이었다. 완전무결하고 고결하고 품격 높은 테니스 황제에 거의 유일한 흠결로 여겨졌다고 해야 할까?
그가 보여주는 테니스 역시 전문가와 팬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이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라켓을 머리 위까지 올리는 리버스 포핸드는 정석과 거리가 멀었고, 당시만 해도 전체 테니스 시즌의 30%를 넘지 못하는 클레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더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또한 탄성을 자아내는 화려한 기술보다는 끈질긴 수비와 왕성한 체력으로 상대를 질식시키는 선수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미디어와 팬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이끌어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달은 30대에 제2의 전성기로 접어들며 더욱 풍부한 이야기들을 썼다. 2인자 시절 자신에게 씌어졌던 온갖 고정관념을 무너뜨렸고, 클레이 코트에서만 강한 선수가 아니라, 하드와 잔디에서도 충분히 압도적으로 강력한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나달표 테니스는 위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보기 좋게 깨트렸다. 그를 제외하면, 36세가 넘은 나이에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건 캔 로즈웰과 로저 페더러, 그리고 노박 조코비치뿐이다. 나달도 역대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오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선수다.
이제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된 나달은 커리어 후기에 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롭게 추가한 우승 횟수 같은 업적이나 더욱 완성도를 높이고 테크닉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달의 승부에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철저하게 땀과 노력, 그리고 투지와 정신력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쓰디쓰고 짭조름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페더러와 조코비치의 경기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색깔이 다른 독특한 매력이다.
메이저 트로피를 기준으로 하면, 나달은 페더러를 넘어섰고, 조코비치는 그런 나달을 또 넘어섰다. 하지만 나달의 위대함은 단순히 메이저 트로피 개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황제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테니스 선수는 분명 페더러였고, 김기범 저자 역시 그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달은 페더러가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테니스의 경지를 열어젖힌 인물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낸다. 테니스 실력을 넘어 인성과 매너, 품격과 운동을 대하는 자세까지 모든 면에서 가장 위대한 챔피언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 바로 라파엘 나달 아닐까 생각한다.
나달은 2024년이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미리 은퇴 의사를 전한 바 있다. 그의 테니스를 더 볼 수 있는 1년은 슬픔, 아쉬움, 안타까움이 아니라 또다른 감동, 감탄, 감사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1년 이후에도 이 책 『라파엘 나달 - 선수 14』는 테니스 팬들을 비롯한 독자들의 곁에 남아 나달이, 나달의 경기가 그리워질 때마다 펼쳐보는 평전으로 자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