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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환영

푸른 환영

  • 이서진
  • |
  • 도화
  • |
  • 2023-10-27 출간
  • |
  • 264페이지
  • |
  • 135 X 200mm
  • |
  • ISBN 9791192828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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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한없이 남루했다. 서너 걸음만 움직이면 사방 동선이 연결되는 좁은 공간의 그것들이 지금 도영에게 실현되는 실체였으며 최선이었다. 그에 비해 오늘 여자의 말속 공간은 이상향일 뿐이었다. 좁고 어둑한 틈새로 과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 뭉텅이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문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이국의 사막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처한 공간의 좌표를 알지 못하는 불안함을 안고 무작정 걸으며, 강렬하게 쏟아지는 열기에 휩싸여 헉헉대는 거라면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다.

서글펐다.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건가.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아닌 것 같았다. 걸어야 한다고 해서 걷지만 뚜렷한 목적 없이 기계적인 걸음만 옮겼다. 자신임에도 제 삶에 대해 무엇 하나 구체화할 수 없는 무력감이 덧씌워졌다.
오래전부터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열망이 쟁여졌다. 쌓아둠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내면을 툭툭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허튼 갈망이라 여기며 스쳐 보냈다. 벗어날 수 없는 남루한 현실을 올무처럼 매달아야 하는 생활이었기에 지나치는 갈피마다 그 갈망을 구겨 넣어야만 했다.
그랬음에도 몸살 같은 열망은 빈번히 치올랐다. 일상 곳곳에서 틈새를 비집고 나와 울컥대는 설움으로 덮쳤다. 바닥을 마구 뒹굴어 형편없이 지저분하고 구겨진 옷자락을 보듯 속이 쓰렸다. 생활은 긴장 상태일 때처럼 자주 경직되었고 먼지가 잔뜩 낀 탁한 유리통에 갇힌 듯 답답했다.
더 이상 그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모호했으나 막연히 묻어두고 싶지 않았다. 속절없이 지나치는 시간을 허허로이 놓치면서 새로운 걸음을 떼는 시기가 더 늦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오래도록 짓누르던 어떤 것들에서 벗어나 정확한 보폭으로 정확한 지점을 향하고 싶었다. 그것을 확고히 끄집어내서 탁한 통 속을 벗어나 숨을 크게 내쉬고 싶었다.

푸른 장미의 징표가 박힌 목덜미는 나임에도 내가 볼 수는 없어요. 그러나 짧은 머리로 훤하게 드러나 많은 사람은 볼 수 있듯, 나와 아주 긴밀한 그들이 어디서든 확연히 볼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싶었어요. 기적이라는 꽃말을 가진 푸른 장미를 담고 있으면 그들이 실체를 드러낼 것 같아서요. 그 바람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간절히 믿고 싶거든요.
무얼까… 여자의 말은. 도영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허망한 바람인 줄 알면서 오랫동안 기를 머리를 단호히 자르고 피부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문신을 새겨 넣는 간절함은 어떤 걸까. 쉽게 지워질 수 없는 표식을 몸에 심고서 긴밀한 이들에게 드러나길 바라는 기적은 무엇일까.

도영은 입력한 문장을 다시 읽어보며 어느 날 예기치 않게 다가든 여자의 무게가 문득 짚어졌다. 여자는 어쩌면 구름이 많이 끼어 흐린 날, 사이를 뚫고 나온 무심한 한때의 햇살 같은 걸까, 잠시 스치는 어지러운 빛의 산란 같은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이미 발길이 들어섰는데 미처 볼 수 없었던 차가운 유리면이 놓여 있다면… 혹여 그게 깨질까 불안해지는 거라면 어찌할까. 도영만의 그런 불안함이 확실시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심경이 아주 쓸쓸해진다. 아무래도 여자를 향한 마음이 이미 깊어진 것 같다.

돌아보면 어머니에 대한 멀건 감정은 도영 스스로 쳐놓은 지독한 상실감의 다른 함량이었다. 채워질 수 없어 안타까이 갈구하는 헛된 발버둥이, 복병으로 도사렸다가 형체도 불분명하게 스멀대고 기어 나와 갉아대는 거였다. 어느 날 불현듯 절박한 무언가를 끄집어냈던 것도 그 발로의 표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의 바탕이 글을 쓰고 싶다는 대체 염원의 궤였는지도.

척박한 길 위의 한 여자와 한 남자를 보며 결국 삶은 도돌이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딘가로 나아가고 무언가를 벗어내려 하지만 주체가 뿜어내는 수많은 욕망 안에서 뱅뱅 돌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으려고 혹은 무엇을 깨닫기 위해 저토록 힘든 노정을 가고 있는 건가, 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과학 문명인 자동차에 앉아 편히 가고 있는 내게 대신 물었으나 대답할 수 없었어요. 내가 지나고 있는 현생의 시간 속에서 나라는 개체의 의미마저 파악하지 못하니 말이에요. 나 또한 수많은 욕망 안에서 뱅뱅 돌고 있는 우주 속의 한낱 미약한 존재니까요.

그래도 그 너머 막연한 어딘가를 향해 눈길에 바짝 힘을 주어 좀 더 먼 시선을 두었다. 그곳에 분명히 있을 거라 믿어질 뚜렷함을 잡고 싶었다. 무엇보다 흐려진 여자를 다시 보고 싶었다. 지난 계절처럼 여자의 이야기 속 시공간에 함께 섞여 생생히 흐르고 싶었다.
도영의 향망은 흐린 눈발 막을 활짝 젖혀버릴 듯 단숨에 치올랐다. 그랬음에도 시선은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몰아치는 눈발에 가로막혔다. 눈발의 이쪽과 저쪽인 경계의 혼돈에서 아른대는 절실한 갈망은 갈피를 잡지 못해 자꾸 흐려졌다.

목차

1~23 / 8

해설
환영의 대위법 _ 장두영(문학평론가) / 239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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