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가사, 세계적으로 희소한 전근대 여성 문학
안방 속 여성들이 기록한 생생한 일상
규방가사(혹은 내방가사)는 조선 후기 여성들이 쓴 한글 문학을 말한다.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도 없고, 글을 배워도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당시 여성의 역할은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길쌈과 바느질 같은 집안일에 힘쓰고 시부모를 봉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허랑하게 글을 지어 퍼트려서는 아니 되니”라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읽고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생각을 4음보 운율에 담긴 가사에 담담하게 풀어냈다. 가사를 지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사연을 풀어내기도 하고, 마음 아픈 이를 위로하기도 했다. 규방가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생하고 솔직했다. 여성들은 공감하는 가사를 베껴 쓰거나 고쳐 쓰면서 널리 퍼뜨렸다. 꾸밈없고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성찰한 규방가사 덕분에 우리는 전근대 시기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기쁨과 슬픔, 꿈과 좌절은 무엇인지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근대 이전에 여성이 주체가 되어 문학을 발전시킨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매우 드물다. “특히 18~20세기 동아시아 남성중심주의 문화권에서 여성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문학 활동은 18세기 서구에서 벌어진 여성 참정권 운동과 비견된다. 서구 여성과 방식은 다르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동아시아 여성들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글로 증언하며 주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_‘들어가는 글’ 중에서
이러한 이유로 규방가사는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되었다. 이처럼 값진 기록을 남긴 주인공들은 대단한 여성들이 아니었다. 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시누이, 올케, 딸이라고 불리는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저자들은 규방가사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알리는 데 오랜 시간 매진한 연구자들이다. 이 책은 그동안 연구실과 학술서로만 존재하던 규방가사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 쓴 최초의 교양서이다. 저자들은 분야별로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하면서 그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의미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덕분에 그동안 지워졌던 우리나라 전근대 시기 여성의 생활사와 문화사를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의 공유를 넘어선 위로와 연대의 문학
이 책에서는 규방가사를 네 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 ‘귀한 딸을 위한 노래’는 조선시대에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귀여가〉는 자식이 없어 오랫동안 치성을 드린 끝에 귀한 딸을 낳고 지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화자는 고픈 배도 부르고, 없는 재미도 절로 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자식이 기고 걷는 모습을 볼 때 부모라면 누구나 느꼈을 감정이 여과 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부분만을 놓고 보면 조선시대에도 딸에 대한 사랑은 요즘 부모가 보여주는 사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_ ‘귀하디 귀한 우리 여아’
규방가사는 주로 여성들이 창작하고 향유했지만 여성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를 대신해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주는 작품도 있다. 〈교녀가〉를 쓴 아버지는 시집가는 딸에 대한 염려, 사랑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2부 ‘세상 밖으로’는 개화기 이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여성이라 불리는 여성들은 신문과 집지를 통해 ‘여성해방’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규방가사에서도 남녀평등과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이 담기게 되었다.
때가왔네 때가왔네 남존여비 없어지고
남녀평등 때가왔네 칠야의 깊이든잠
날샌줄 모르고서 잠꼬대로 알지말고
어서바삐 꿈을깨어 사람노릇 하여보세_ 〈해방가〉 중에서
〈해방가〉는 여성이 구질서, 구도덕에서 깨어나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뿐만 아니라 구여성이 쓰는 규방가사에도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기게 된 것이다.
한편 같은 시기 60대 여성 이사호는 〈생조감구가〉라는 작품에서 신여성과 모던 보이에 대해 신랄한 냉소를 보내는 가사를 지었다. “일제강점기라는 국난의 시기에 제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운 것을 자랑하는 것이 작자의 눈에 가소로워 보였는지, 신식을 배울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다시 익혀 국난을 극복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를 돌아다니지 않고 규중에 있어도 구식 부녀가 천추사적을 다 익히고 있다는 자신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다. 외국어를 하고 신식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 일본 사람 밑에서 일하며 월급을 받아 배를 채우며 사는 소위 변절자들을 비판하며, 옛것을 통해 국난을 극복할 것을 가사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_ ‘신문물에 대한 구여성의 냉소’
당시에는 조혼을 한 뒤 홀로 서울로 유학을 간 남편이 아내에게 갑자기 이혼을 통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애결혼 바람이 불면서 ‘무식한 여자’와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하자 시골에서 오매불망 남편을 기다리던 여성들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시골 여자 서러운 사연〉 같은 작품에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사랑받기를 갈구했으나 느닷없이 이혼 통보를 받은 여성들의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시골 여자는 참고 인내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자신이 처한 문제를 탐색한다.
가련하다 우리여자 이팔청춘 허다풍상
믿을 곳이 거의없다
(중략)
원통하다 우리신세 아내되어 남편에게
사랑한번 못하고 산들 무슨 일이 있나
염라대왕 원망일세 나를 어서 데려다가
평화를 알려주소 못잊을세 우리부모
금옥같이 날을 길러 만복을 바랐건만_ 〈시골 여자의 서러운 사연〉
“시골 여자가 자신의 처지만 한탄하지 않고 ‘가련하다 우리여자’라고 하는 것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구여성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 여자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는 살 가치도 없다고 느끼고 염라대왕께 목숨을 걷어가길 청해보기도 한다. 그 와중에 자신을 금과 옥같이 키워준 부모님이 생각난다. 부모님 무릎 아래 구슬 같았던 존재였고, 결혼해서는 최선을 다해 시집살이를 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자신이 귀한 존재였고 열심히 살아왔음을 새삼 깨달으며 시골 여자는 자신을 새롭게 각성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_ ‘시골 여성의 억울함은 여성 모두의 문제’
3부 ‘독립에 대한 열망은 남자와 다르지 않다’에서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을 하는 남편이나 아버지를 따라 망명길에 오른 여성들이 쓴 가사를 소개한다. 일본의 감시가 심해져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지자 많은 이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 상해 등지로 이주하여 독립투쟁을 이어갔다. 여성들은 넓은 집과 하인들을 두고 떠나 낯설고 열악한 환경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면서 견뎌야 했던 시간을 가사에 세세하게 기록했다.
“가족을 따라 만주로 간 여성들은 독립운동가들의 강력한 조력자였다. 만주에서 여성들은 농사를 지어 독립운동가들을 먹이고, 해진 옷을 기워주었다. 전쟁터에서 총칼을 들고 싸우는 이들은 남성이었지만, 총칼을 들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일은 여성들 차지였다.”
처음에는 ‘여필종부’라는 명분으로 망명길에 올랐으나 독립운동 현장에서 운명을 함께하면서 이들의 의식은 점차 변해간다. 처음에 보여준 소극적인 지지와 달리 세상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서 굳은 결의에 찬 강인한 여성으로 변화한다.
내가 비록 여자이나 이목구비 남자와 같고
심정도 남자와 같이 행하지는 못하오나 생각이야 없을소냐
......
이 시대 이십세기 문명한 빛을 얻어
남의 뒤를 따르지 말고 만주일대 부인이 왕성하여
독립권을 같이 받고 독립기를 같이 들고
압록강을 건너갈 때 승전고를 울리면서
좋은 노래 부를 적에 대한독립 만만세요
대한 부인들도 만세를 높이 부르면서
고국을 찾아가서 풍진을 물리치고
몇해동안 그리던 부모동기 친척들과 상봉하고
그리든 정 나누며 회포 풀고 만세영락 바라볼까_ 〈원별가라〉 중에서
이들이 남긴 가사가 있어서 만주에서 벌어진 항일운동 속 여성들의 노고가 알려졌다. 총칼을 들고 직접 나섰던 여성들은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뒷바라지하며 조력했던 여성들의 희생은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4부 ‘우리들의 연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에서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서 친정 나들이 한번 하기도 힘들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온전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혼인이 필수였다. 아버지, 남편, 아들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었으니 여성에게 결혼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생존의 문제였다. 〈노처녀가〉는 혼기가 찾으나 시집을 가지 못한 노처녀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나의 혼인 문제를 내가 결정하지 못하는 가부장제 시대에 무능한 아비지를 탓하는 내용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세상 사람들아 이내말씀 들어보소
인간만물 생긴후에 금수초목 짝이 있다
인간세상 생긴 남자 부귀자손 같건마는
이내팔자 험궂어 나같은 이 또 있든가
....
적막한 빈방 안에 적적하게 홀로 앉아
뒤척이며 잠못이뤄 혼잣말 들어보소
이미 늙은 우리부모 나를 길러 무엇하리
죽을 때 날 길러서 잡아쓸까 구어쓸까_ 〈노처녀가〉 중에서
〈신행가〉는 시집가는 딸을 위해 시집살이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 있고,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적은 내용도 있다. 시집을 간다는 것은 부모 형제와 어쩌면 영원히 이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신행가〉에는 고향을 떠나 낯선 시집으로 떠나는 서러움이 절절하게 표현된다. 시집살이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은 〈여자탄식가〉,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려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부여교훈가〉를 통해 당시 여성들이 겪었던 고통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여성들은 시집살이의 고단함과 단절감을 규방가사를 쓰고 읽으면서 달랬다. 〈사모가〉는 시집 아주머니가 친정에 가지 못한 종손부를 위로하며 지은 가사이다.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며 시집살이를 견뎌야 하는 심정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아픔이었다. 여성들은 무수한 불행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기와 남의 고통을 저울질하지 않고, 다른 이의 슬픔에 공감하고 회복을 돕는다. 규방가사가 단순히 감정의 공유가 아니라 위로와 연대의 문학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이내말삼 들어보소”
방 안에 갇힌 여성의 적극적인 말 걸기
규방가사는 “이내말삼 드러보소”라며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홀로 읊조리는 독백이 아니라 바깥으로 향하는 말하기였던 것이다. 여성은 중문 ‘안’에 갇힌 존재였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존재는 아니었다.
고된 시집살이에 외출 한 번 하기도 힘든 삶이었지만 규방가사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했다. 그들은 억울한 삶을 글로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랑을 적어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오랜만에 나들이를 함께하고 나서 여성들 간의 유대와 연대를 소중히 기록했다. 또한 여성을 위한 교육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여성들은 규방가사를 읽고 지으면서 지식과 교양을 터득하고 전수했다. 규방가사는 이처럼 글쓰기를 통해 위로받고 공감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해간 여성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