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로 사회인 대열에 합류한 작가 야마우치 마리코
궁상맞기도 허영에 빠지기도 싫은 삼십대 여성의 시각에서
사고 쓰고 처분하는 고민과 기쁨을 꾹꾹 눌러 담은 본격 쇼핑 에세이
★ 아마존 재팬 독자평
§ “딱 지은이가 이 에세이를 썼을 때의 나이가 된 내게, 잡지 같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떠는 기분도 들게 하는 책.”
§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말자, 꼭 필요한지 숙고해 사자. 이런 메시지를 주는 자기 계발적인 책은 많지만 ‘나도 알아, 하지만 쇼핑은 즐겁게 하고 싶다고!’ 같이 말하는 책은 드물다. 고개를 주억이며 술술 책장을 넘겼다.”
지은이 야마우치 마리코는 특별할 것 없는 지방 도시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예술 대학을 졸업하고 서른둘에 첫 작품집을 출간한 소설가다.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 사회로 진출해 근사한 의류로 치장하는 걸 지켜보며 ‘명품 같은 것엔 관심 없어’라고 말하던 그녀지만 등단 작가가 된 이상 이런저런 대외 활동을 피할 수 없게 된 처지. 마침내 남부끄럽지 않을 명품 지갑을 하나 장만하기로 결심하고 고급 패션 쇼핑의 상징인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이세탄 님’)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이런 장면과 함께 시작되는 『쇼핑과 나: 이세탄에서 사랑을 담아』는 현대 일본을 살아가는 삼십대 여성의 시각에서 쇼핑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를 차곡차곡 쌓아 엮은 본격 쇼핑 에세이다. 이십대 시절까지는 싸고 귀여운 물건으로 주위를 가득 채웠지만, 이제 번듯한 사회인의 일원으로서 쇼핑 습관도 일신해야 할 필요를 느낀 시기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좋아하고 가슴 설레는 상품들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종종 마주친 쇼핑의 시행착오 이야기도 솔직하고 유쾌하게 담겨 있다.
화려한 소비 문화에 대한 동경과 불황 세대다운 절약 정신 사이에서 망설이고 고민한 끝에 지출을 결정하지만, 그렇다고 이른바 미니멀 라이프나 에코 프렌들리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의식만큼은 늘 하고 있다). 매일같이 이세탄에서 명품 쇼핑을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이세탄은 어디까지나 동경의 상징일 뿐!). 다만 동경과 의식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추구하는, 그리고 그것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은 평범한 소비 세계의 일원으로서 써 나간 책이다. 때론 유머러스하게 또 때로는 담담하게, 가끔은 진지한 성찰도 하며 무궁무진한 쇼핑의 세계를 지은이와 함께 누벼 보자.
여성의 시선으로 생생한 세계를 그려 온 작가
야마우치 마리코의 좌충우돌 쇼핑 생활기
2008년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R-18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야마우치 마리코는 2012년 첫 단편집 『여기는 심심해 데리러 와 줘』를 출간했고, 이후 거의 매년 신작을 발표하며 현대 일본의 가장 활발한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올랐다. 문학만이 아니라 영화, 미술 등 예술 전반에 조예가 있는가 하면… 어린 시절부터 패션 잡지를 탐독하며 쇼핑을 향한 꿈을 키운 ‘쇼핑 의존증 의심자’기도 하다! 이 책에는 그런 그녀의 다양한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오랜 팬이었던 영화 배우 관련 토크 이벤트에 패널로 초대된 것을 계기로 영화 속 배우가 입었던 실크 셔츠를 찾아 이세탄을 헤맨 이야기, 앤티크 버튼(단추)에 빠져 밤새도록 스웨터 버튼을 바꿔 다는 데 몰두한 일화, 어느새 집에서 입기에도 어색해진 토끼 무늬 파자마에 대한 애착을 고백하는 장면 등은 쇼핑 그리고 물건에 대한 지은이의 진심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대형 유통 체인이나 인터넷 쇼핑의 확산이 가져오는 편리함을 인정하면서도 공존이라는 테마를 고민하는 모습은 ‘여성의 시선’과 더불어 ‘로컬의 시선’으로 세계를 그리는 작가라는 평판을 떠올리게 한다. ‘지름신’에 휘둘리다가 불황 세대 특유의 절약 정신에 뒤늦게 제동이 걸리는 모습도 어딘지 친근하다. 고향 도야마의 마스코트인 기토키토군과 송어 초밥 귀고리 같은 굿즈를 열성적으로 홍보하는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응원의 마음이 생겨 그녀의 영업력에 넘어가 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지은이는 이 책의 원형이 된 『주간 문춘』 연재 중에 결혼이라는 생애의 중요한 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런 변화가 담담하게 쇼핑 경험 속에 녹아 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 가운데 하나다. 남자친구와 반지를 맞추러 갔다가 남성용 반지가 훨씬 비싸다는 사실에 승복하지 못하고 목걸이를 추가하는 장면, 신혼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고민하는 장면, 로봇 청소기 구매를 고려하다가 과거엔 여성이 편리한 생활 가전을 사려는 것을 게으름으로 치부하는 시선이 있었다고 짚는 부분 등은 여성으로서 자의식을 재치 있게 드러낸 대목이다. 그런 동시에 자축을 구실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팬으로서 꿈꿔 온 명품 구두를 덜컥 사 버리거나 폐관을 앞둔 명물 호텔 오쿠라 도쿄 본관에서 결혼식을 치르기로 결정하는 부분 등은 과연 못 말리는 쇼핑 마니아구나 미소 짓게 한다.
이렇듯 이 책과 여타 ‘쇼핑’ 책 사이의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소는 이 매력적인 화자다. 동경과 의식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는 가운데 쇼핑의 기쁨과 고민을 솔직하고 경쾌하게 들려주는 지은이에게 독자는 어느새 오래 사귄 친구와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일기장이자 잡지 같은,
오랜 친구와의 잡담이자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 같은
이 책에는 지은이 삼십대 초중반의 1년 남짓한 기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일상을 속속들이 공유하는 것이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오랜 친구와 수다를 떠는 기분도 들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쇼핑 과정과 가격 등 정보를 꼼꼼히 펼쳐 보여 주고 사용 후기와 추천 평도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쇼핑 잡지나 정보지의 칼럼에 비길 만하다. 정보 제공을 주목적으로 하는 책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일상 묘사 속에서 우리를 부추기기도 하고 지난 경험을 곱씹으며 다음 쇼핑의 전략을 구상하게도 하는 실용성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은이가 패션이나 쇼핑의 전문가가 아닌 만큼 늘 정선된 정보만을 전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누구나 겪을 만한 시행착오를 솔직히 들려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상품 이야기를 지인에게 듣는 것처럼 믿고 들을 수 있다. 지은이의 말에 흥미가 동해 책에서 마주친 모르던 브랜드나 상품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있는 자신을 금세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은이처럼 사회에 진출하며 소비 방식을 바꿀 필요를 느끼고 있는 독자에게는 그녀의 모색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있더라도 도시 여성의 삶이라는 근본적인 접점은 확고히 존재하니 말이다. 전염병 유행이 잦아들며 다시 일본을 찾기 시작한 쇼핑 관광객에게도 이 책은 유쾌하고 유용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스스로 수줍게 고백하듯 실제로는 고급 브랜드 중심인 이세탄보다 중저가형 쇼핑몰 등을 애용한다니 그런 알뜰형 쇼핑 지식이 실전에서 도움이 될 때가 있지 않을까. 선물 고르기로 고민할 때 읽으며 아이디어를 얻는 데도 유용하다.
무엇보다 쇼핑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쓰고 또 그걸 찾아 읽는 사람들끼리니까 한껏 공감할 수 있는 온갖 물욕 이야기(물론 상품으로서 책까지 포함하는)에 쇼핑 의욕이 가득 충전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에피소드마다 곁들여진 일러스트레이터 가와하라 미즈마루의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는 책에 확실한 에지edge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