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다
이 책 첫 장면의 텍스트이자 노래 「늘 그대」의 첫 소절은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빼앗았다. 정말이지 어딘가에 가볍게 퉁 부딪쳐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했다. ‘어쩌면 산다는 건 말야, 지금을 추억과 맞바꾸는 일.’ 감탄할 수밖에 없는 글귀였고, 자꾸만 곱씹게 되었다. 감성을 자극하려는 말과 글은 아름다워 보이도록 다듬기 마련인데, 왠지 이 글귀는 글쓴이에게 온전히 체화되어 자연스레 흘러나온 느낌이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삶을 있는 그대로 읊조린다고 해야 할까. 더구나 노래의 연주자가 가수 양희은이었기에 마음의 울림이 대단했다.
첫 부분부터 압도된 까닭에 이어지는 내용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늘 그대』의 모든 문장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아무것도 내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더는 아무것도 머무르지 않는 게 서글플 때조차 우리 마음속의 감정이 휘발되지 않고, 어딘가에 차분히 내려앉도록 위안을 건넨다.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을 쓰는 일이다. 시간은 우리에게서 하루하루 사라져 간다. 썼으니 남는 게 없어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다행히 물리적 시간은 사라지고 나서도 우리에게 추억을 남긴다. 추억을 떠올릴 때 무엇보다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람일 테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 주고, 나로 살아가는 힘을 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지금을 살고 있다. 글쓴이가 작가의 말을 마무리하며 써 내려간 문장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아무것도 사라지는 건 없습니다. 사라진 지금은, 추억으로 메워지니까요. 사랑은 남습니다.’
어떤 대상을 떠올려도 가닿을 만큼 우리 마음을 물들이는 말, 늘 그대
「늘 그대」라는 노래를 처음 들을 때엔 인생 경험이 풍부한 여성의 관점으로 배우자든 연인이든 이성을 향한 사랑을 떠올렸다. 양희은이라는 연주자에 공감하며 들었기 때문이다. 참 좋았다. 그런데 반복해서 들을수록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이 노랫말과 만나 새로운 화학 반응을 만들어 냈다. 다른 사람들과 노래의 감상을 나누면서 제법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은 다 내 얘기’라는 말이 있듯이 듣는 이들 각자가 자신의 상황과 관계 속에 나만의 ‘늘 그대’를 대입하고 있었다.
곽수진 작가와 그림 방향을 이야기할 때 출판사의 제안은 한 가지였다. 화자가 어떤 사람일지는 열어 놓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작가는 오랜 고민 끝에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풀었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던 모녀 사이는 딸이 성장하면서 조금씩 멀어진다. 딸은 자기 인생에 집중하느라 엄마를 향한 마음을 잠시 잊은 듯하다. 하지만 엄마와 딸 사이에 깊이 뿌리내린 사랑은 결코 빛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고, 그중 반이 딸이며 다시 누군가의 어머니일 수 있다. 공감해 줄 독자들이 분명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성이 아니라 해도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따스하게 물들 것 같았다. 나아가 ‘그대’는 연인이든, 가족 중 한 사람이든, 친구든, 반려동물이든 독자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존재라면 누구라도 관계없을 것이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와 독자를 거치는 사이 ‘늘 그대’는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그림책이 지금을 추억과 맞바꾸고 있는 모든 순간에,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물들여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