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혼한 품격을 선보이는 소설.
소설은 삼대(3代) 여인의 구한말에서 근대까지 약 150년의 이야기다. 또 무대는 구한말 조선과 중국, 근대 한국을 종횡으로 이동하는 서사다. 예로 3대 주인공 유화의 독백을 들어보자.
☞ 긴급한 피난이었다. 그렇게 떠난 피난 생활은 길 위에서 약 4년. 중국이라는 대륙을 종으로 북상했던 고등어 떠살이 가족이었다. 거리는 바다에 인접한 상하이에서 중국 서쪽 깊은 내륙인 충칭(重庆)까지 무려 1만 2천 리(약 4천 7백 킬로미터). _「유화」 226쪽.
소설은 이렇듯 피탈의 상처들을 고스란이 감당해야 했던 여인들의 웅혼한 여정 이야기다. 따라서 일각의 소감처럼 전개는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시킨다. 그런 조선의 어머니와 딸들, 그녀들의 고단한 인생사. 책을 펼치면 따라가야 하는 3대에 걸친 이야기는 물살을 가르는 시간과 공간은 잇댄 영화 속 파노라마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건 무엇보다 주인공 여인들의 강한 인상들이 한 몫한다. 예로 딸 송이를 살리기 위해 이토히로부미와 함께 조선합병의 주역이었던 하야시 곤스케(はやしんすけ) 앞에서 고등어 회로 담판을 벌이는 장면이나. 2대 주인공 송이가 정구를 통해 펼치는 역동적 몸짓들은 하나같이 강렬하고 자주적인 캐릭터로서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3대 주인공 유화 역시 전생과 피난사를 훑으며 인동초의 여인으로서 아려하면서도 끈질긴 인상을 선사한다. 소설이 다른 결의 느낌으로 개성강한 주인공들의 이야기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하는 이유다.
왜 고등어는 산으로 가야 했는가?
고등어는 1대 주인공 ‘초향’과 봇짐장수의 아들인 ‘원이’와의 사랑의 계기가 된다. ‘원이’는 고등어를 염장해 파는 어머니가 간잡이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 흐름 내내 주인공들은 고등어를 각별히 자신들의 처지로 빗대고 있다. 예로 본문 중 고등어 요리를 두고 초향의 아버지 배문호 베드로가 했던 말을 들어보자.
☞ “우리는 방앳잎처럼 세상에 거부된 자들이오나 기실은 향기를 가진 사람들로 하늘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이 고데이(고등어의 경상도 청소 사투리)가 그렇습니다. 바다에 사는 이들이 어찌하여 산으로 올랐습니다. 천주여. 저희가 바로 산에 오른 고등어가 맞습니다. 또 당신께서도 베드로에게 너희는 사람을 낚는 어부라 하셨던 그 말씀처럼 저희가 바로 물고기이니 또 이런 고데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_「고등어 한 손」 36쪽.
또 산울림 김창완의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중략)..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놓고 주무시는구나.(중략)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좋은 걸!”
바로 고등어는 못 먹고 없이 살던 시대의 대표적인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특히 깊은 산골에서 먹었던 간 고등어는 산야채와 더불어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이요 고향의 향수라 하겠다. 소설은 이렇듯 시종 고등어와 어머니. 또는 ‘어머니와 고향!’으로의 고등어 모녀들의 변주곡이다. 간단히 초향의 멋진 고등어 변주를 들어보자.
☞ “송이야. 엄마는 고등어를 구울 때 갸들의 고진 사연을 함께 굽지. 조림을 할 때는 방아잎으로 녀석의 소중한 기억을 싸서 올리고. 다른 아이들도 매한가지. 사실 손님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먹는 게야. 향기를 넣어 아그들의 속살까지 배어든 각각의 바다 이야기를 먹는 게야. 향기를 넣어 아그들의 속살까지 배어든 각각의 바다 이야기를 먹으면서 떠올리는 거지.”_「송이」 124쪽.
끝으로 《산으로 간 고등어》는 사라진 우리 산아의 아름다운 생태들과 고여, 그리고 사투리를 인상적인 시적 묘사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몇 가지 본문을 예를 들어본다.
ㆍ“여 어딩교? 아즈메, 우예 산만디(산마루)에 구디(구덩이)요? 아, 우얄꼬! 그 고운 얼굴로 우짜 껄뱅이(거지)처럼 사시려 하우?” (67쪽)
ㆍ“아서! 와 니는 그카노? 개골창(깊은 도랑) 도째비 멀꺼디(머리카락) 서는 야심한 밤에! 내 짝지(작대기)라도 들고 따라 나서꼬마!” (71쪽)
ㆍ“으으 저! 아망시(똥고집) 참 마티다(고집스럽다) 마텨. 도시 해거름(해질녘)도 아니고 칠흑에 칭계(계단) 없는 만대이(산 정상)까지. 그러다 방구(바위)에 미끄리다 다치면 어찌하우?
소까지(관솔,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아궁이 깔비(솔가리, 소나무 가지를 땔감으로 쓰려고 묶어 놓은 것)라도 챙기자고 암만 그캐도!” (72쪽)
ㆍ“말세라! 시대가 일패의 끝에 있으니 이 시국은 풍랑이요. 아기씨, 이 바닥도 기예를 받을 자는 없어지고 권번으로 내몰리니 세류가 혼탁하지요.”(152쪽)
ㆍ“눈이 먼 하얀 세월이 가을이면 눈앞에서 성성일 것만 같은 이곳은 바람결에 묻어나는 어느 소년의 눅눅한 비린내와 함께, 그의 열린 앞섶에서 나오던 허기진 인내를 맞았던 소녀의 고즈넉한 슬픔이 담긴 하얀 시간의 둔덕이다.”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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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여인들의 가슴 아픈 향기와 함께 잔잔한 박동과 여운이 남는다. 그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또한 믿음을 사수하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낸 우리의 어머니, 또 그 딸들로 이어지는 내리 사랑과 헌신을 오롯이 느끼기 때문이다. 《산으로 간 고등어》는 오늘 대한민국인(人)을 돌아보게 하며 진지하게 사색케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