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인생 20여 년, 남은 건 웹툰 지망밖에 없었다
게으르게 살아온 한 중년 만화가의
뒤늦은 성장 투쟁기
격동의 시대 21세기 대한민국,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대에 발맞추어 탄생한 웹툰은 2000년대를 거치며 만화의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자, 스마트폰의 대중화 바람을 타고 만화 생태계를 완전히 석권하기에 이른다. 2023년, ‘만화’라는 명칭은 바야흐로 ‘웹툰’의 옛말에 불과하게 되었으며, 출판 생태계에서 생존한 극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고 ‘웹툰 급행열차’에 탑승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시대가 급변하는 줄도 모르고 출판 만화의 한길만 걸어온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강귀찬’. 그는 40대 중반에 들어선 즈음부터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과 부양해야 할 가족, 암담한 가정경제 현실을 뒤늦게 실감하며 황급히 웹툰 급행열차에 뛰어들고자 한다. 하지만 20년 넘게 반복하여 굳어진 게으른 작업 습관과 생각들은 번번이 발목을 잡는다. 강귀찬은 어느 날은 실패하는 스스로에게 절망하고 또 어느 날은 느슨한 계획으로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검증됐거나 젊고 참신한 신진 작가를 선호하는 웹툰 시장은 그에게 철옹성 같은 벽으로 다가오며, 날이 갈수록 절망과 자학이 쌓여 간다.
《일어나요 강귀찬》은 웹툰이 만화의 주류가 된 오늘날,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웹툰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중년 만화가의 일상을 희극적으로 그려 낸 만화이다. 주인공 강귀찬이 자기 삶을 자조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전개되는 동안 그의 과거와 오래된 상처들까지 불러들이며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역순으로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더불어 그의 주변 인물들이 지나온 삶을 함께 엮어 내며, 한 사람의 생을 통해 짠내 나는 웃음과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냉혹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하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 자기 자신과 싸우며 힘들게 자기 나이에 요구되는 몫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어른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와 응원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제껏 경계에서 머뭇거렸을 뿐인 생일지라도
삶은 계속된다
이 책은 40대 중반에 들어선 한 만화가의 일상을 짧은 에피소드 만화 형식으로 담고 있다. 20년 넘게 만화가로 살아온 강귀찬에게는 그의 만화를 기꺼이 찾아보고 응원할 팬도,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도 없다. 시원찮은 벌이로 집안은 경제적 압박을 받아 왔지만, ‘돈을 벌어다 줄 만화’를 당장 만들어 내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자조 섞인 유머와 좌절로 점철된 강귀찬의 삶을 한 편 한 편 들여다보면 단순히 웃기거나 한심하다며 한마디로 잘라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솟아오르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싶지 않은, 알더라도 감추고만 싶은 자기 자신의 약하고 싫은 면면을 끄집어내어 강귀찬의 삶 곳곳에 심어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내가 어릴 적 꿈꿔 왔던 삶에서 저 멀리 와 있을지라도,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경계 언저리에서 계속 맴돌았던 그저 그런 삶을 살아왔을지라도, 지금의 나 자신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삶은 계속된다고 저자는 강귀찬을 통해 말한다. 저자의 삶에서 비롯한 경험을 응축한 이야기이기에 이 만화가 주는 울림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 편집자의 말
맨 처음 이 만화의 초반부를 읽어 보았을 때 강귀찬은 몹시 이상한 아저씨였다. 저렇게 삶의 구석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왜 저 게으른 아저씨는 잠만 자는 것인지, 그렇다 할 만큼 제대로 해 보지 않았으면서 왜 창문에 올라가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는 만화가의 삶을 따라가 보니, 게으르고 나약하게만 보였던 그이의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계속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싸우며 살아내기를 멈추지 않는 그이를 어느새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삶에서 절망과 힘듦을 겪고 있을 사람들 역시 강귀찬을 만나며 저마다 무언가를 하나씩 얻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불쑥 돋았다.
이 책으로 강귀찬을 만나는 사람들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