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욕망에 대한 소설적 보고
「해 뜨는 집」, 「우정의 거처」는 후일담 소설의 형식인데, 여기에서도 자기 욕망이 먼저 앞서는 인간 군상들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특히 「해 뜨는 집」의 경우 학생운동 시절의 추억에만 빠져 있을 뿐, 결국 자기 욕망에 충실한 등장인물들에 대해 주인공인 ‘인수’가 보여주는 반응은 도덕적 비난에 그치지만, 「준법정신」의 ‘김정수 씨’나 「내가 뭐 어때서」의 달수와 영덕, 철민의 원형인 것처럼도 보인다.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뭐 어때서」에서 성호가 “서울에서 살 때 그토록 부딪혀 왔던 인간 군상들”을 언급한 것도 심상치가 않다. 무엇보다도 마을 공동체가 파괴된 것에는 도시의 욕망이 농촌으로 흘러들어온 사회적 배경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뭐 어때서」에서 은연중 드러난다.
요즘은 이 마을도 도시와 똑같이 저마다의 울타리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지 않던가. 마을 공동체라는 말은 역사책 속으로 숨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내가 뭐 어때서」 중
이런 세태와 「해 뜨는 집」에서 대학 시절 때 은사인 김동현 교수를 대하는 변호사 친구 강성진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김동현 교수는 “작년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공천 심사위원”이었으며 “게다가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분으로 무슨 국무위원 후보로도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김동현 교수를 대하는 변호사 친구 강성진의 모습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속물의 전형이다. 비록 인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학 시절 단골집인 ‘해 뜨는 집’으로 향하는 것밖에 없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 욕망에 취해 사는 우리 현실이다.
서글픈 현실에 굴하지 않는 건강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김 사장」에서도 「내가 뭐 어때서」의 달수, 명덕, 철민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는 바로 ‘김 사장’인 민호의 친구 필재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궤멸적인 타격을 받을 때 배달을 통해 나름 성업 중인 필재는 ‘더 많이’ 벌지 못해 불만인 인물로 그려진다. 한마디로 힘들어 하는 친구인 민호에 대한 염치와 예의가 없는 인물이다.
“아, 김 사장! 그건 모르는 소리야! 나는 밤에 맥주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컸다구. 그런데 이젠 맥주를 한 번 떼면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야! 오늘도 이젠 장사 끝이지. 원래는 지금부터가 피크인데 말이야. 그러구 소득이라는 것이 말이지, 월 몇백 벌던 사람은 일이백 떨어질 테지만 이삼천 벌던 사람은 그 떨어지는 단위가 달라.”
-「김 사장」 중
힘든 와중에서도 민호는 주방 아르바이트인 미진과 계속 가게를 꾸려나가겠다고 다짐하지만, 이것도 사실 다짐 이상의 의미는 없다. 어쩌면 소설가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일지 모른다.
황선만 작가의 첫 소설집 『내가 뭐 어때서』는 세태 풍자에 머무는 작품집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욕망에 눈이 번들거리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소설적 보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