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ㆍ청소년에 대한 어른들의 ‘오래된 시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다
100년 전, 아동 해방에 눈 뜬 선각자들은 아동을 ‘미래’로 발견하였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믿음은 견고하다. 아동이 미래의 국가를 책임질 ‘제2의 국민’이기에 소중하게 여기며 잘 길러야 한다던 선각자들의 주장은 오늘날 상식이 되었다. 더불어 아동에 대한 선명하고 견고한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바로 ‘백지’이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경험철학자 존 로크가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던 ‘타불라라사(빈 석판)’가 근대에 발견된 아동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백지는 그 가능성과 개방성에서 알 수 있듯이, 누가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질적 차이가 생긴다. 하지만 아동ㆍ청소년을 미래로 발견한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동ㆍ청소년이라는 백지에 무엇을 넣을지 설계하고, 제도를 만들어 아동ㆍ청소년의 삶을 규율한 주체는 어른이다. 근대 사회의 어른은 아동을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하느냐에 따라, 즉 아동이란 백지에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아동의 미래뿐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보았다. 식민지시대에 아동ㆍ청소년은 민족의 독립과 사회주의 혁명의 일꾼으로,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분단된 조국에선 남북을 막론하고 새 조국 건설과 전후 재건 사업의 기수로 그려졌다. 어른들은 마치 삶에 정답이 있고,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아동ㆍ청소년이 나아갈 이상적인 방향을 정해두고 아동ㆍ청소년을 그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아동ㆍ청소년 이야기는 그것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탄생했다. 이런 관점에서 아동ㆍ청소년 이야기는 어른들이 아동ㆍ청소년을 매개로 그들 자신의 결핍, 욕망, 가치관을 드러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백지』에 실린 글들은 바로 아동ㆍ청소년 이야기를 매개로 100년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어른들의 아동ㆍ청소년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시선을 성찰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