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보라는 새로운 고찰 대상의 발견
잡보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 신문의 일반적인 지면과 달리 기사, 서사물, 칼럼 등 다양한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 복합적이면서도 미분화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던, 말 그대로 ‘잡스러운’ 지면이다. 각 신문별로 가장 방대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잡보란은 그 내용적 다양성 또한 풍부하여 근대 초기 사회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면서도 대단히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그 위상과 중요도에 걸맞은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근대 초기에 발행된 신문들의 잡보란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사실의 보도 외에도 풍문의 전언과 함께 심지어 허구를 사실처럼 구성하여 전달함으로써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현대의 일반적인 기사의 범주로 분류할 수 없는 내용들이 혼재해 있는 지면인 동시에 근대 초기에 대중들에게 신문명과 문물에 대한 지식 및 정보의 전달이라는 백과사전적 기능까지도 수행했던, 폭넓은 편폭과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된 당대의 ‘멀티콘텐츠 저장소’이자 자생적으로 형성된 민간의 ‘기록 보관소(archives)’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따라서 잡보란이라는 텍스트는 논설에 대한 독해만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당대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의 사회적 실천, 주요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담긴 복잡하면서도 복합적인 맥락, 대중들의 일상적 삶을 구성함과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켰던 사물들 및 콘텐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서이자 수단인 것이다. 잡보란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근대 초기 한국 사회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의 타당성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잡보를 통해 근대 초기 한국 사회의 생생한 현장 읽기
이 책에서는 근대 초기에 발행되었던 신문들의 잡보란이 한국 근대 초기의 현실에 대한 총체적 조망과 고찰을 위한 자료로서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유용하다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이를 위해 1895년 9월 『한성신보』에 의해 한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에서 최초로 잡보란이 개설된 이래 각 시기별로 발행된 다양한 근대 초기 신문들의 잡보란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을 시도하였고, 더불어 동일한 시기에 발행된 신문들의 잡보란을 상호 비교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토대로 당대의 현실이 매체에 의해 어떻게 묘사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먼저 Ⅱ장에서는 1895년 9월 잡보란을 최초로 개설하였던 『한성신보』를 필두로 하여 1900년 이전까지 근대 초기 신문 시장의 형성기에 등장하였던 『독립신문』, 『조선(대한)그리스도인회보』, 『그리스도신문』, 『협성회회보』, 『매일신문』, 그리고 『제국신문』 등 다양한 민간 발행 순국문 신문들의 잡보란을 비교 고찰하였고, Ⅲ장에서는 신문 시장이 확대되고 매체의 다양한 분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인 1904~1907년 사이에 등장하였던 대표적인 신문인 『대한매일신보』와 신자료인 확대판 『제국신문』, 그리고 『경향신문』 잡보란을 비교 고찰한 후, 이들 신문의 등장에 앞서 대척점에 서 있었던 일본인 발행 신문이자 그 동안 비공개 자료였던 『대한일보』의 잡보란을 집중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서로 다른 정파성을 지닌 매체들이 당대의 현실을 어떻게 상이하게 묘사하고 있었는지를 비교 고찰하였다.
요컨대,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학계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매체 자체의 다양성이라는 요인에 대한 고찰과 함께 매체 내의 지면 중 기존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조명을 받지 못했던 잡보가 지닌 내용적 다양성, 그리고 현실의 총체적 면모를 풍부하게 담아냈던 구체성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