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본질을 소통하는 동아시아의 연대로
동아시아에서 ‘전후(戰後)’의 탈식민지화는 예나 지금이나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제국주의에 냉전 구조가 중첩되는 형태로 폭력의 연쇄 속에 휘말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전 해체라는 세계사적 전환을 통해 어떻게 국가폭력의 시대를 극복하고 정의를 회복하며 화해할 것인가라는 과제와 마주해 왔다. 이 책은 그러한 폭력에 노출된 전후의 동아시아가 나라와 지역을 초월하며 트랜스내셔널하게 전개해 온 ‘기억과 화해’의 폴리틱스(politics)를, ‘과거의 극복’을 향한 ‘포스트제국’의 연대로 규정하고 그 실천적 의미를 되묻는다.
이 책은 3부 9장의 논의를 통해 이 같은 물음에 대한 응답을 시도한다.
제1부 〈‘포스트제국’의 담론〉은 동아시아에 있어 제국 일본이 국민국가로 수축하는 과정을 다룬다. 식민지·점령지(외지)에서 일본 본토(내지)로의 인적 이동을 일컫는 ‘인양(引揚げ)’ 및 ‘귀국’, 또 냉전의 붕괴로 구 피식민자들이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활발해지는 전후보상운동이 어떠한 전후의 제도편성 속에서 형성·변용해 왔는지 응시하고,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포스트제국’ 연대의 생성과정을 밝혀낸다. 그 ‘월경하는 연대의 사상’이라는 수맥을 추적함으로써 만나게 되는 인물로 이 책이 가장 주목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작가 모리사키 가즈에였다.
제2부 〈‘포스트제국’의 표상〉은 일본의 제국 지배에 기인하는 표상의 문제로서, 한일관계의 불씨가 되는 ‘소녀상’, ‘군함도’, ‘욱일기’ 이 세 가지에 주목한다. 이들 표상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또 재생됨으로써 ‘포스트제국’의 문화 권력을 구축하고 있는지 기억론,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서사론으로 분석한다. 아 세 가지 표상은 모두 한일관계를 초월하여 동아시아에 있어 ‘탈제국’의 좌절을 상징한다. 이러한 표상의 생산과 소비, 규제와 아이덴티티의 폴리틱스로부터 ‘포스트제국’을 주제화하면 전전과 전후를 관통하는 제국 일본의 근대주의를 엿볼 수 있다.
제3부 〈‘포스트제국’의 기억〉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과 내전, 독재와 항쟁이라는 굴절된 근현대를 헤쳐 온 동아시아가 냉전에 의한 이데올로기 대립과 얽히고설키는 폭력의 연쇄에 휘말린 결과, 어떻게 국가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고 화해를 이룰 것인가라는 과제를 마주한다. 구체적으로는 제주·베트남·대만이 해당 지역과 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트랜스내셔널하게 전개하는 기억과 화해의 정치를 통해 보여주는 ‘과거 극복’의 고유성과 보편성의 해명을 시도한다.
이 책은 이러한 논의를 통해, 패전으로 인해 일본이 상실한 것은 식민지가 아니라 제국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는 ‘포스트제국’의 시점을 제시하고, 이 시점에 입각하여 일본 제국의 판도에 있었던 구 식민지와 피지배국이 새로운 관계성을 발견하기 위한 연대의 길을 제시한다. 나아가 이 책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의 동아시아가 국가와 지역을 초월하여 전개해 온 기억과 화해의 폴리틱스를 과거의 극복을 향한 ‘포스트제국’의 연대로 규정하며 그 실천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