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을 도운 예술의 힘
미술과 문학은 어떻게 성경을 번역했을까?
“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
종교개혁이 지금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종교개혁을 신앙의 뿌리로 두고 있기에 그러리라. 그렇지만 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종교개혁이 다시 일어나라는 말인지 모호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썩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한국교회’라는 허상을 들이대며, 그 익명성 뒤에서 던지는 일종의 ‘타자화’는 아닐까.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저 교회는 저래서 안 되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들이 외치는 종교개혁의 실체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것은 아닐까. 루터가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는데, 그것이 저절로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프로테스탄트’ 무리들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 1555년이 되어서야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통해 신교도들이 정식 종교로 인정받았다. 장로교의 뿌리가 되는 칼뱅파는 1648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루터와 칼뱅이 살았을 때, 종교개혁은 이단의 불길이었다.
어떻게 종교개혁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유튜브나 언론에서 매일 쏟아지는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는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없다. 종교개혁이 당대와 다음 세대들에게 전수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이었다. 개혁자들은 성경을 그 세대들의 눈높이에 맞게 글로 번역했고, 콘텐츠로 번역했다. 그것이 쌓여서 결국 종교개혁을 이루어 낸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쳤던 콘텐츠를 생각해 보자. 기독교 강요, 루터의 대교리-소교리 문답,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그리고 최고의 교리로 평가받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에 이르기까지 교육 내용은 성경,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종교개혁을 계승한다는 것은 이런 교육의 내용까지 이어받는 것이다. 그들은 이 내용을 교육하기 위해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위의 내용을 가르쳤다. 과연 다음 세대는 위의 내용을 어떻게 접하고 이해하는가? 암기와 주입으로 외는 것 외에 제대로 배운 것이 없다. 그래서 예배 시간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은 주문처럼 변했고, 주기도문은 행사를 마무리하는 절차이며, 십계명은 ‘은혜’라는 이름 뒤에 밀려나 버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종교개혁’을 외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명확하다.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은 16~17세기의 예술이 되었고, 그것들이 쌓여서 시대의 문화가 되었다. 이 책은 종교개혁 콘텐츠와 시대의 예술을 접목해서 종교개혁 교육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아울러 “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는 방식을 현실에 접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이드와 방법을 제공한다.
이제 종교개혁을 향해 구체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되기를 소망하며 이렇게 제시해 본다.
“종교개혁으로 교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