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공부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열 살 여자아이 점동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이화학당에 입학했어요. 이화학당은 선교사가 세운 여학교였는데, 여자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 주고 공부도 시켜 준다며 학생들을 모으고 있었어요.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외국인을 무서워하고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낯설게 생각했기 때문에 학당에 가려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점동의 아버지는 서양에서 온 선교사 아펜젤러의 집사로 일하고 있어서 그들이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무엇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지요.
처음에 점동은 이화학당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가족들과도 동네 친구 순덕이와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무섭게 생긴 서양인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까지 돌았거든요. 그런데 소문과는 다르게 이화학당의 교장 스크랜턴은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었지요. 점동은 스크랜턴이 왜 조선에서 소녀들을 돕는지 궁금했어요. 남자 선교사가 학교를 세우고 남자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이해가 되었지만 여자가 공부를 하다니요. 조선은 공부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스크랜턴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여학생들을 위한 학당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려고 조선에 온 선교사들 덕분에 점동도 더 넓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요.
“여자도 의사가 될 수 있나요?”
이화학당에서 생활한 점동은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어요. 어느 날, 스크랜턴은 점동에게 보구녀관 의사로 오는 로제타의 통역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보구녀관은 조선 최초의 여성 병원이었는데 조선에 여자 양의사가 없어서 외국에서 오는 것이었지요. 점동은 여자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 의사라는 말에 깜짝 놀랐어요. 조선의 여자들은 남자에게 몸을 내보이거나 만지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기 어려웠는데, 여자들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점동은 신이 나서 돕겠다고 했어요.
점동이 통역을 잘하자 로제타는 점점 점동에게 약과 치료법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점동이 의료 보조를 맡아 주면 치료하기도 편했고, 어쩌면 점동 같은 아이들이 조선에서 의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점동은 약이나 치료법을 배우고 싶지 않았어요. 공부가 어렵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피가 너무 무서워서 수술할 때 옆에서 지켜보다가 눈을 질끈 감기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점동은 로제타가 화상으로 손가락이 붙은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자기 피부를 떼어 내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손가락을 분리하는 수술도, 남을 위한 로제타의 마음도 놀라웠지요.
‘수많은 조선 여자들은 그들을 치료해 줄 의사가 필요해.’
로제타는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를 만나기 위해 왕진을 다녔어요. 통역을 위해 로제타를 따라다니던 점동은 치료받지 못하는 조선 여인들의 현실을 보게 되었어요. 여자는 아기도 낳아야 해서 몸이 아프거나 위험한 상황이 자주 있었지만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웠어요. 오히려 잘못된 미신과 민간요법으로 병을 키우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점동은 로제타를 더 잘 돕고 싶었지만 자신이 두려워하지 않고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잘하는 것보다 계속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로제타의 말을 떠올리며 두려워도 잘 참고 해내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어느 날, 점동은 로제타가 구순 구개열 환자를 수술하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수술을 마치고 기뻐하는 환자를 보며 점동은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구순 구개열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수술 후에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기도 했지요. 로제타는 의사가 상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인생을 바꿔줄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점동은 조선에도 여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지요.
‘누군가는 조선을 흔들어 깨워야 해.’
점동은 세례를 받아 에스더가 되었어요. 에스더는 별이라는 뜻이었어요. 아무것도 몰랐던 열 살 점동은 꿈과 목표가 생기면서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고 있었지요. 에스더는 자신의 꿈을 응원해 주는 남편과 결혼한 후 마침내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의대 공부는 어렵고, 고향과 가족들이 보고 싶고, 가난과 피곤에 찌들어 살아야 했지만 에스더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가족들, 스크랜턴, 로제타, 오와가 그리고 남편 박여선을 위해 에스더는 최선을 다했어요. 힘들고 슬픈 시간까지 이겨 내고, 간절한 노력 끝에 마침내 에스더는 의사가 되었어요.
에스더는 미국에서 의사로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여인들이 있는 조선으로 향했어요. 그러나 에스더를 기다리고 있는 조선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서양 사람, 서양 의학이 아직 낯선 조선에서 사람들은 에스더에게 서양 귀신이 붙은 게 아니냐고 욕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미신과 민간요법이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약과 치료법 그리고 위생 수칙을 가르쳐야 했지요. 과연 에스더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새로운 의학 지식을 알리며 조선 사람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을까요?
여자는 공부할 곳도 없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시절, 조선 최초의 여학교에서 공부하고 조선 최초의 여성 병원에서 의학에 눈뜨며 조선 최초의 여의사가 된 에스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당나귀를 타고 환자들을 찾아다녔던 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에는 선교사, 이화학당 등 개항과 함께 근대식 교육의 바람이 불던 조선 후기를 소개하는 ‘그때 그 시절’, 여의사로서의 박에스더를 알아보고 조선 시대의 또 다른 여성 의료인을 소개하는 ‘인물 키워드’, 보구녀관, 박에스더상, 김점동관을 소개하고 박에스더 영상을 큐알 코드로 만날 수 있는 ‘인물 그리고 현재’ 등 정보 페이지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 박에스더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요.
청어람주니어 블로그(https://blog.naver.com/juniorbook)에서 《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독후 활동지를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인물 관계도, 낱말 퍼즐, 독서 퀴즈, 독서 토의·토론 등 다채로운 내용이 담겨 있으니 독후 활동 시 활용해 보세요.
‘여성 인물 도서관’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1. 왜 여성 인물일까요?
옛날에는 유교 사상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여성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 시대에도 정치, 사업, 학문, 문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여성들이 있었어요.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남성들보다 덜 알려진, 하지만 알아야 할 여성들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 동화로 엮었어요.
2. 다른 인물 이야기와 무엇이 다를까요?
인물이 살던 시대와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적 구성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역경을 이겨 내는 인물의 성격과 삶의 태도에 집중했어요.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는지, 어떤 점에서 뛰어났는지 조명함으로써 입체감 있는 인물의 삶에 몰입해 실감나게 읽을 수 있는 인물 동화예요.
3. 인물 이야기로 어떻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 앞에 ‘인물 관계도’와 ‘연표’를 넣어 인물과 연관된 사람들과 인물의 생애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어요. 이야기 끝에는 인물이 살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알려 주는 ‘그때 그 시절’, 인물의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인물 키워드’, 인물의 영향으로 생겨나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유물·장소·제도 등을 소개하는 ‘인물 그리고 현재’를 넣었어요. 인물 이야기와 더불어 역사 정보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다채롭게 구성한 역사 동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