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자들이 경험하는 강렬하고도 특별한 연결
우정의 천재들이 전하는 최고의 친구 사귀는 법, 그리고 최선의 친구가 되는 법
우정의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시공간이 다르거나, 정서적 친밀감이 없더라도 그 관계를 우정이라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한나 아렌트가 내린 우정의 정의를 제안한다. 그는 친밀감을 강조하는 우정보다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며 세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우정, 즉 세상을 변화시키며 세상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주도적으로 찾아 나가는 관계로서의 우정을 진짜라 여겼다.
이런 삶에서 친구는 단지 내가 실제 만나고 사귄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과 삶의 방향이며, 이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현실과 텍스트를 가로지른다. 이 책의 모든 여성들은 치열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신의 삶을 살고, 또한 이 모든 것을 다시 말과 글로 남겼다. 읽고 쓰는 행위로 연결되는 경험은 그 어떤 접촉보다도 강렬할 수 있다.
아렌트는 이렇게 백여 년 전에 태어난 유대인 여성 라헬 파른하겐의 마음에 직접 가닿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 정체성의 문제를 깊게 고찰하는 철학자로 여물 수 있었다.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이 된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라이벌과 동지들은 또 어떠한가? 캐서린 맨스필드, 비타 색빌웨스트와 같은 동시대 문인은 서로 경원하고 질시하기도 하며 이러한 우정의 교류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크기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키워나간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여성에게 배타적인 학계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함께 성장한다. 서로에게 가장 먼저 글을 보여주고 가감 없이 비평을 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는 없었을지 모르나 미래에는 함께할 여성의 자리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당대의 여성 사상가 시몬 베유에게 젊은 시절 친교를 거절당했으나 그와의 이러한 관계가 자신에게 중요했다고 기억한다. 그 또한 평생토록 세간의 기준과는 다른 우정을 실천했고, 비올레트 르뒤크와 젊은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친밀감’ 없는 우정의 심도를 선사한다.
우정의 천재가 친구를 얻고 자신의 삶을 확장하는 모습은 언제나 또 다른 이들을 세상으로 불러낸다. 백여 년 전 태어난 여성의 삶이 이 시대 젊은 여성들에게도 여전히 새로운 우정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책 속 인물들, 그리고 저자와 함께 끝없는 수다를 떤 것 같은 친밀감과 동시에 고양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읽는 행위를 통해 이 위대한 여성들의 우정은 다시 새로워진다. 또 한 번 생명력을 얻는다.
이처럼 박경리라는 위대한 작가가 탄생한 배후에는 죽마고우의 우정이 있었다. 박경리 또한 “내 동무가 얻어 준 그러한 우연이 없었던들 내 성격으로는 문단에의 길이 절대로 열리지 않았을 거로 알고 있다.”라고 고백하며,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최혜순이 김동리에게 박경리의 글을 소개한 것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박경리의 습작들을 친구가 꼬박꼬박 읽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작가에게는 언제나 독자라는 동무가 필요하다.
- 「프롤로그: 친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울프와 색빌웨스트는 더 이상 지상의 존재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남긴 작품들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올랜도』의 주인공 색빌웨스트는 올랜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울프의 작품도 무한히 재해석될 것이다. (......) 문학 자체가 우정의 최종 목표였던 울프와 색빌웨스트 그리고 맨스필드. 그녀들은 여전히 새로운 여성의 출현을 기대하며 다음 세대 여성들의 우정을 한껏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 「맞수와 동반자: 버지니아 울프, 캐서린 맨스필드, 비타 색빌웨스트」
아렌트는 파른하겐의 책을 통해 파른하겐을 깊이 이해하고 파른하겐의 마음에 가닿았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는다는 행위는 곧 독자가 저자와 친구가 된다는 의미임을 아렌트의 삶과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해하기 어려운 책은 다가서기 힘든 친구와 비슷하지만, 마침내 그 책을 제대로 읽어 냈을 때 독자는 저자의 내면을 이해하게 되고 저자가 쓴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저자와 우정을 맺게 된다.
- 「정직한 친구들: 한나 아렌트와 라헬 파른하겐」
르뒤크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고 믿었기에 보부아르는 그녀를 묵묵히 응원하면서도 정작 만나면 엄격하고 냉정한 말만 했다. 우정을 거절할 때 비로소 우정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는 시몬 베유의 통찰은 보부아르의 삶에서도 확인된다. 르뒤크는 보부아르의 문학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투지로 작가 생활을 이어 나갔다.
- 「우정을 받을 자격: 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베유, 비올레트 르뒤크」
책을 향한 열정과 존경심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럽과 미국 전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비치는 누구라도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플래너는 비치와 모니에를 여성의 독서 환경과 책의 관계를 변화시키려고 했던 운동가로 기록했다.
- 「책 친구들의 집에서: 아드리엔 모니에와 실비아 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