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제사냐 독제사냐, 그것이 문제로다
: 생의 감각과 존재 근원의 탐구
시집을 여는 첫 시 「좋아해」는 좋아하는 것을 하나둘 꼽는 아이의 당찬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리는 듯하다. 아이는 하늘 나라에 있는 왕할아버지, 집 나간 고양이, 부서진 자동차처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을 호명하며 그리워하지만 그럼에도 당연하게 미래를 꿈꾸고, 몰래 코딱지를 파먹는 무아지경의 순간으로 돌아와 생에 찰싹 달라붙는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어린이의 마음으로, 시인은 마치 ‘업사이드 다운’(위아래가 거꾸로 상반된 쌍행성이 항성을 따라 공전하는 세계)처럼 설계된 두 세계-삶과 죽음, 아이와 어른, 자연과 문명, 실존과 예술, 의식과 무의식-를 가볍게 오가며 기존의 개념을 부수고, 경계를 허물고 이으며 존재의 근원을 탐구한다.
우리는 해가 지는 길의 끝까지 달려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어요, 배가 고팠거든요
엄 마 는 저 녁 밥 을
름 짓
구 고
색 라 보 엔 늘 하
아저씨,
만약에 아저씨가 우리 옆집에 산다면
함께 모락모락 김이 나는 저녁밥을 먹었을 텐데
그러면,
지독한 슬픔이 잊히고 아저씨의 빨간 네모가
덜 아름다웠을까요?
_「로스코 아저씨가 옆집에 산다면」 부분
엄마와 함께 전시를 본 뒤 화가가 그린 슬픔을 내내 떠올리던 아이는 “해가 지는 길의 끝까지 달려가고 싶”어하지만, 중간에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시인은 실존과 예술 사이에 서서 스스로에게,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덜 아름다웠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해 우리는 네모난 시의 창을 열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야 한다. 마치 앨리스가 굴속으로 떨어지듯, 흰건반을 두 번 누르거나(「도도새」) 우리끼리(「머리 굴리기」) 초록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서면(「숲속으로 모험을 떠날 거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엉엉 울어도 괜찮고(「눈물 나라의 여왕」)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그라미도 네모, 네모도 동그라미가 되는(「동그라미의 정체」), 내가 얼음! 하면 늑대조차 얼어붙는(「숲속으로 모험을 떠날 거야」) 그곳에서 ‘나’는 오로지 스스로의 마음으로 세계를 마주하고 경험하며 진정한 ‘나의 정체’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다.
투명 젤리를 먹고 투명 인간이 되면
: 독보적 동심,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마음
시인은 시 속에서 스스로 아이가 되기도, 아이(손녀)의 마음을 보듬고 안아 주는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시인이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 동시가 “그동안 내 안의 아이에게 애써 덮어 두었던 보자기를 스르르 벗겨 냈기” 때문이리라. “귀 밝은 아이”가 아픔과 슬픔에 귀 기울이듯 “쇠다리 시인” 역시 낮게 자란 것들에 몸을 기울인다. 아이와 할머니는 ‘독보적 동심’을 지니고 있기에 나란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각박한 현실 앞에 통제되거나 애써 감추며 희미해졌던 동심은 시 앞에서 비로소 되살아나 아픈 육체로도 얼마든지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축제를 경험할 수 있고,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꿈을 꿀 수 있다.
햇살 환한 어느 날 문득
나를 마주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주아주 가끔은
이렇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서 못 견디는 날이 있으니까요
_「구렁이의 드레스」 부분
시인은 눈앞의 세계를 투명한 마음에 그대로 비추어 낸다. “기절한 생쥐를 절대 잡아먹지 않는“ 독보적 약제사의 독보적 동심이다. 그렇기에 “투명 인간이 되면 너는 어떻게 할래?”라는 시인의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시인의 초대로 시 속을 거닐던 독자는 투명한 몸에 비친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돌아 나와 자신의 삶을 다시 ‘독보적 동심’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독보’에 대한 꿈은 아이들이 가진 자연스러운 생심(生心)의 하나”(유강희)이기 때문이다. 시처럼 살아가기를 꿈꾸는 독보적 약제사, 독보적 시인의 꿈은 그렇게 독보적 동심으로서 이루어진다.
우리 신나게 놀자
지는 해에 우리가 온통 붉게 물들 때까지
그림책 『농부 할아버지와 아기 채소들』 『팔이 긴 사람이 있었습니다』 등을 통해 한껏 드러났던 현민경 화가의 개성은 더욱 적극적으로 독자를 시 속으로 초대한다. 시원시원하게 뻗친 선, 손짓하듯 살아 움직이는 화가의 유머러스한 그림은 시 안과 바깥을 자유롭게 오가며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마치 시집 전체가 또 하나의 캔버스인 듯 느껴지는 질감과 자유롭게 펼쳐지는 그림이 다시금 시 속 화가(로스코)와 시인, 화가를 연결 지으며 세계를 시집 바깥으로까지 생생하게 확장시킨다. 시인과 화가가 내민 손을 잡은 우리는 새하얀 병실과 널따란 들판, 다정하고 따뜻한 우리 집과 동네를 건너 미로 같은 숲속과 거대한 도서전의 책 속까지 한바탕 신나게 누빌 수 있을 것이다. 온몸이 해에 물들 때까지!
우리 동시가 그에 이르러 다시 한번 변곡점을 맞으리라는 즐거운 예감이 든다. 세계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유머와 동화적 상상력이 만나 독특한 시적 아우라를 뿜어 내고 있다. 숨 막힐 정도로 무모하고 아름다운 이 시적 여정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_유강희(시인)
무엇보다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여 줄 뿐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아서 좋았다. 예상을 비껴가는 감각의 설계가 우리를 얼마나 멀리 데려갈 수 있는지, 개성은 유려한 문장보다는 유연한 상상력에 의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_김개미(시인)
참으로 정돈된 시다. 그림이 그려지는 동시, 흠잡을 데라곤 없는 맨드리가 고운 동시 편편이다. _이상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