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 중 하나
강력해지는 국가에서 예술은 무엇인가?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며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하던 시기에, 왜 그리스인들은 ‘비극’에 열광했을까? 20대 고문헌학자 니체는 프로이센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전투의 한복판에서 이런 고민을 펼칩니다. 이 보불 전쟁에서 프로이센은 프랑스를 굴복시켰고, 점령지 파리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니체는 다시 독일이 강력해지는 시기에 왜, 바그너의 음악극과 같은 뛰어난 예술이 탄생하는가에 주목합니다. 비극은 무엇인가, 음악정신은 무엇인가? 왜, 약한 국가가 강력해질 때 비극(음악)은 대유행하고, 비극(음악)이 죽었을 때 강력했던 국가는 몰락하는가? 국가의 성쇠와 음악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전투에서 돌아온 니체는 곧바로 「음악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줄여서 「비극의 탄생」)을 집필합니다. 이 책은 28살 니체가 당대 현실과 나눈 대화이자 이후 니체 사상의 출발점이 됩니다. 신을 죽였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철학적으로 살해했으며, 기존의 모든 가치를 부정했던, 그리고 현대 철학과 사상의 뿌리가 되었던 니체의 사상이 바로 이 책에서 출발합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 서정시와 음악(민요) 그리고 춤과 웃음을 각인해 넣었습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 예술인 음악과 춤이 인류를 하나로 만드는 힘이며, 음악과 춤 안에 바로 형이상학적 실체가 있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은 형이상학의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고대 비극에서 형이상학적 철학을 분쇄할 힘을 발견합니다. 음악과 춤, 예술이 불러오는 공감이 하늘에 떠 있는 초월자나 이데아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데아와 신 중심의 형이상학을 깨부수고 새로운 형이상학이 나타납니다. 니체는 인간이 매일 겪는 지독한 고통의 치료제로 음악과 춤을 제안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는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여기서 이 책을 읽을 이유 중 하나를 찾아봅니다. ‘강력해지는 국가에서 예술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BTS, 블랙핑크, 뉴진스 등 K-pop으로 퍼지는 한류의 철학적 기원을 묻는 질문으로 바꿔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편집자의 말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고 해설해서 「비극의 탄생-시민을 위한 예술을 말하다」로 새롭게 탄생시킨, 이남석 박사는 집필 완료 후 지금껏 「비극의 탄생」 공부 소모임을 59차례나 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제 총 25개 장 중 9번째 장을 통과 중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인 우리에게는 이 책이 난공불락 텍스트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양한 신화와 비극 작품, 문학, 음악, 철학, 역사적 사건, 니체 당대의 현실 그리고 니체 자신만의 용어와 사유가 책의 도처에서 출몰하기 때문이고, 또 원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해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한 권의 번역서로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남석 박사는 오래된 정공법을 택합니다. ‘니체가 쓴 용어, 구절, 문장마다 주석하고 해설하자!’ 고전을 읽어 온 동서고금의 독서가들이 해 온 방식입니다. 총 5권, 25개 장, 145개 절마다 원서에 없던 제목을 달았습니다. 또 각 절을 쪼개어 ‘원문’을 맛보고, 주요 용어와 구절과 문장에 담은 니체의 사유를 그 자체로 이해해 보고, 앞뒤 맥락을 쫓았습니다. 역사적, 철학적, 문학적, 음악적 의미를 골라내서 이전 시기의 그것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니체 사상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살피고 현대 사상과 철학에 기여한 바를 되짚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서 나온 ‘해설’은 그야말로 빛이 납니다. 해설자의 수고로운 설명은 ‘다시 보기’를 통해 종합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초고를 받고 나서부터 2년 반 만에 간신히 1900쪽의 편집을 교정하고 색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일정 바꾸기를 도대체 몇 번이나 거듭했는지 셀 수 없었습니다. 교정과 편집은 항상 예상을 초월했습니다. ‘찾아보기’에 보면 ‘디오니소스’ 낱말 하나의 세부 항목이 81개 나옵니다. 세트 전체 본문을 다시 훑어야 하는 무한 반복 작업이었습니다. 이 역시 이남석 박사에게는 또 다른 인내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한 연구자의 기나긴 수고와 인내가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앎과 사유를 지극히 넓혀 줄 보물로 영글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이 보물이 니체의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