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문학의 비평적 모험을 정점으로 이끈 문학평론가
故 김이구의 동심이 발견한 소박하고 아름다운 세상
2017년 10월 31일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故 김이구의 6주기를 맞아 유고 평론집 『동심이 발견한 세상』을 펴낸다. 뛰어난 출판편집자이자 기획자, 평론가로 문단에서 전방위적 활약을 했던 그의 갑작스러운 부음에 당시 수많은 문인과 출판관계자 들의 황망함이 깊었다. 특히 한국 아동청소년문학 비평이 발전해 온 갈피마다 고인의 자취가 선명하여 아동청소년문학장(場)에서 빈자리는 더욱 컸다. 그가 생전에 발표한 아동청소년문학에 관한 글 중 기간된 책에 실리지 않은 것을 엮은 이번 평론집은 “작품을 시대와 현실, 어린이라는 좌표 위에서 읽어 내는 시선”이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고 따뜻하다.”(어린이청소년SF연구공동체 플러스알파 ‘추천사’) 예리한 눈길을 견지하면서도 상호 대화적 관계를 추구하는 태도는 작가·작품·독자 간 접점을 만들어 중개하고자 하는 평론가의 책임 의식에서 비롯하는바, 『동심이 발견한 세상』은 아동청소년문학 비평의 전환기를 이끈 것으로 평가받는 그의 저서 『어린이문학을 보는 시각』(창비 2005),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창비 2014)를 잇는 비평의 본보기로서 아동문학 작가, 연구자 및 독자 들에게 믿음직스러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동시 비평의 최전선에서 남긴 마지막 문장들
2015~2017 한국일보 연재 에세이 ‘김이구의 동시동심’ 수록
1부에는 저자가 작고하기 직전인 2017년 10월 20일까지 약 2년간 연재한 동시 에세이 ‘김이구의 동시동심’을 한데 모았다. 그는 동시대에 출간된 동시집들을 성실히 검토하며 치우치지 않은 감식안으로 유려하고도 냉철한 시평들을 쓰는 한편 ‘동시동심’과 같이 평론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도 편히 읽고 동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짧은 에세이 성격의 동시 소개 글을 꾸준히 발표했다. 철이 바뀔 때마다 계절의 풍취를 담은 동시를 인용하며 감상적인 분위기를 그리기도 하고, 섬세한 언어로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동시를 통해 자신의 솔직한 심상을 대변하기도 했다. 권태응ㆍ류선열ㆍ윤복진ㆍ윤석중ㆍ임길택 등 앞세대 동시인의 성취를 돌아보거나 김성민ㆍ신민규ㆍ최수진 등 주목할 만한 신인 동시인의 작품 세계를 상세히 분석하며 출발선에 선 이를 응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1부의 글은 대개 저자의 담백한 목소리로 “영양가 많고 오래도록 물리지 않는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읽는 이를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쑥 들어온 비수에 놀라”(원종찬 「책을 펴내며」)게 만드는 묘미도 크다.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게이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 등 사회 이슈에 대해 상황에 적실한 작품을 들어 비판하는 글(「자꾸 바다 밑을 생각한다」「재치 있고 가벼운 말놀이」「‘블랙리스트 예술가’의 마음」 등)은 사회적 참사 희생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추모의 부재, 책임 소재 규명 문제가 반복되는 오늘날에도 시의적절하게 읽히며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당대 현실과 작품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독자와의 접점을 만드는 ‘현장 발언’으로서의 평론
2부에는 동시집 및 청소년소설 해설과 서평, 3부는 어린이문학의 장르 용어 및 동시의 난해성 문제를 다룬 글, 잡지 인터뷰 등을 실었다. 2부의 당대 비평들은 작품의 개성적인 세계를 탁월하게 분석하고 작품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글로, 생생한 현장성을 바탕으로 글쓴이의 시각을 밝히는 비평의 표상으로 삼을 만하다. 3부에서는 십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 유효한 문제의식을 일찍이 간파한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여러 동시인 및 연구자들은 저자가 2007년 발표한 평론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 이후 동시단이 ‘뿌리 깊은 어린이 인식(어린이는 좁은 사고, 제한된 경험, 제한된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닌 존재)’과 ‘낡은 감각(해묵은 관습에 얽매여 낡은 작법 반복)’의 갱신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 동시가 일대 전환기를 맞았으며 비평의 수준 또한 한 단계 도약한 것으로 평가하는바, 3부 「인터뷰: 김이구 평론가에게 듣다」(2013)에는 당시 동시단에서 벌어진 논쟁의 주요 내용과 일련의 토론 흐름 속에서 저자가 느낀 솔직한 심정이 가감 없이 담겨 흥미롭다. 2015년 이른바 ‘잔혹 동시 파문’ 이후 발표한 「오늘의 우리 동시를 말하다」(3부)는 동시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아이들의 심리를 관습적ㆍ피상적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아야 하며 “더 심층적”으로 어린이를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가 강조한 ‘어린이 인식’ 진전이 여전히 아동문학장 전체의 과제로 남아 있음을 일깨우고 새로운 가능성 모색을 촉구하는 글이다.
계간 『창비어린이』 창간, ‘한낙원과학소설상’ 공모 제정 등
아동청소년문학의 미답지를 끊임없이 개척한 기획ㆍ편집자
한편 2부에는 한낙원의 『금성 탐험대』(창비 2003) 서평 두 편과 제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안녕, 베타』(사계절 2015) 서평, 그리고 작가 한낙원을 상세히 소개한 글까지 총 네 편의 글이 실렸다. 저자의 아동청소년SF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명감이 엿보이는 글들로, 그는 “연구를 기다리는 미답지”(「어린이 청소년 과학모험소설을 개척한 작가 한낙원」)인 한낙원을 꾸준한 공부 대상으로 삼아 2013년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현대문학 2013)을 엮어 펴내고, 2014년 한낙원과학소설상 공모를 제정하는 데 힘썼다. 아동청소년SF 장르만을 모집하여 시상하는 한낙원과학소설상 공모는 지난 10년간 작가들에게 SF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으며 개성 있는 신인 작가들을 배출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에 앞서 김이구의 주도로 1996년 제정된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역시 걸출한 작가를 다수 발굴해 온바, 아동청소년문학의 다양성, 어린 독자들이 읽는 문학 작품의 진취성을 중시한 편집자 김이구의 도전 정신이 이룬 성취라 할 만하다. 그 자신이 편집자이자 평론가로서 아동청소년문학에서 ‘주례사 비평’이 일관하는 문제점을 진단하고 아동문학 담론의 활성화를 위해 2003년 계간 『창비어린이』의 창간을 이끈 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기까지 『창비어린이』는 우리 아동청소년문학 비평의 중심 역할을 하며 고인의 뜻을 이어 왔다. 새로운 평론가와 작가 발굴이라는 과제가 오늘의 편집자와 평론가 들에게도 긴요한 지금, 『동심이 발견한 세상』을 읽는 일은 그가 남긴 귀중한 씨앗을 소중히 거두는 일과 맞닿는다. 치열했던 문학적 생애를 뒤로하고 “지친 몸을 쉬러 안온한 보금자리로 귀소”(「둥지에서 넓은 세상으로」)한 고인의 마지막 행보를 총망라한 이번 유고 평론집이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평범하고 소박한데, 아름답고 찡”(「진짜 이웃 사이」)한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