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문득 공원에서 발견한 기쁨과 사랑,
우리 일상을 가득 채우는 산책의 다정함!
“너는 아직 그곳을 모르지. 보여주고 싶었어, 함께 공원을 산책하자.”
아이와 할아버지의 산책,
우리도 이곳에 있다는 감각
아이와 할아버지는 그저 공원을 걷는다. 우리는 이 따뜻한 배회를 산책이라 부르기로 한다. 산책 중 아이는 일상적인 공원 풍경을 마주한다. 물론, 어느 동네에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순간 많은 것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걷잡을 수 없이, 아주 깨끗하게 말이다. 이 책은 그런 힘을 가졌다. 호수 위에서 자맥질하는 오리, 흙과 낙엽의 냄새, 손가락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입안에서 솜사탕이 녹는 느낌. 우리 모두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감각을 언제 마지막으로 느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 책은 우리가 그렇게 잊고 지낸 감각을 선명하게 일깨워준다. 그것도 아주 생소하게 말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아이의 시선으로.
일상이 너무 빨리 흘러가다 보면 우리는 무언가 놓칠 때가 많다. 아마 이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너무 바쁜 날에는 오늘 하늘이 무슨 색이었는지, 고개 한번 들어본 기억조차 없는 날도 있다. 하지만 《보여주고 싶었어》는 다시금 우리에게 일상의 아름다움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책을 읽는 순간 모든 곳이 공원인 것처럼, 독서가 산책인 것처럼. 그렇게 읽고 들여다보면 휴식할 수 있고, 또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감각이 이 책을 통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어쩐지,
시를 쓰듯이 꾹꾹 눌러 쓴 편지처럼
이 책은 꼭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쓴 편지 같다. 이 동화를 쓴 ‘카미유 조르다니’는 프랑스 작가 중 젊은 층에 속한다. 그러나 이 책의 느낌만큼은 그렇지 않다. 그만큼 많은 것을 정리했을 테고, 또 정제했을 것이다. 꼭 필요한 말만 건네되 그 모든 단어에 무게를 실었다. 이 책의 언어는 꽤 포근하다. 그가 이 동화를 쓰며 걸었을 공원이나 길, 계절에 우리는 가본 적 없지만. 이 글은 우리를 환대하며 안아 주고야 만다. 마치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처럼. 더 나아가 우리가 상상하는 그 길이 어디든, 프랑스의 어느 평범한 공원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차분하고 정적인 그림은 이러한 글과 꽤 잘 어울린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세밀한 터치들로 그림의 완성도를 높였다.
‘시’라는 장르가 가진 특징이 장면을 에둘러 묘사하고, 또 그것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거라면 이 책은 시를 닮았다. 마지막까지 읽으면 마치 한 편의 시를 다 읽은 것만 같다. 이건 곧 글과 글 사이에 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행간은 우리가 생각을 조금 더 기울이고 상상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잔디밭이 되어준다. 어떤 풍경을 상상하든, 그것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것. 그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닐까.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기,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풍경을 본다. 가끔 보기에 좋은 풍경도 있고, 매일 봐서 정이 든 풍경도 있다. 물론 그렇게 우리를 환기하는 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아침에 나를 감싸는 가을의 서늘한 공기, 그 감촉은 우리가 스스로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하나로 삶의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은 아주 작은 것으로도 풍족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본 이런 일상의 풍경을 손자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손자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간다. 뭐 하나 특별함이라고는 없는 장소이지만, 아이는 그저 기뻐한다. 마치 그 풍경을 다 가진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어떤 풍경을 사랑하는 건 그 장면이 예뻐서만은 아닐 거다. 아마 그걸 보여주고 싶은 대상이 있기 때문이겠지. 단풍나무 아래에서 함께 걷고, 찬 바람을 느끼고, 나무의 냄새도 같이 맡는 즐거움. 이 책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풍경 하나하나가 사랑에 대한 증거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 마음을 붉게 물들이던 도시의 노을, 이제는 아이도 그 물듦을 안다. 사소한 일상을 배우고, 알고, 사랑하게 되면서 세상을 배워 나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보여주고 싶었어》는 일상과 풍경, 감정 등 바쁜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끊어진 감각을 다시 잇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