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제도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을 판가름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것이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펼쳐 들자마자 무엇보다 경찰력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경찰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십 대 소녀가 대신하고 있는 동안 경찰은 실상 아무런 행동 개시도 하지 않고 핍 혼자서 오롯이 모든 결과를 맞닥뜨리는 모습이 절망스러울 정도다. 핍은 이미 한번 리틀 킬턴의 추악한 비밀의 공포를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경험하기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저 평범하고 ‘착한’ 여자아이로 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 터다. 그렇기에 더더욱, 실종된 친구를 찾기 위한 풍파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써보지만 어느샌가 또다시 사건에 발을 들여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에 다가가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는 도중 서서히 통제력을 잃고 결국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옳은 길을 향해 매진하는 핍의 투지와 결단력, 포기를 모르는 직진 스타일이야말로 다시 한번 이 소설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한다.
“해야만 하니까요.” 핍이 말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결심을 했으니까요. 코너한테 더 이상 이런 일은 못 하겠다고 거절하고 어제 경찰서에 찾아갔어요. 경찰이 제이미 실종사건 조사에 빨리 착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요. 전 그냥 그렇게만 도와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경찰에서는 제이미를 찾기 위한 아무런 조사도 시작하지 않았어요. 할 수가 없대요.” 핍은 손을 팔꿈치 밑으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경찰에서 못 한다고 하니까, 다른 길이 없었어요.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에요. 코너랑 아줌마가 찾아와서 그렇게 부탁을 하는데 못 하겠다고 하면요? 만약에 제이미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요? 죽기라도 하면?” (p. 163)
작가 피터 잭슨은 핍이 행한 엄청난 역할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핍은 놀라운 탐정이지만 실제로 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핍은 날카로운 칼날 앞에 흔들리며 자신이 그 칼에 베이게 될지 그 칼날을 피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다. 핍 이외에도 소설에는 1권과 마찬가지로 라비, 카라, 코너, 나오미, 나탈리, 다니엘 다 실바 같은 낯익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언제나 핍의 지원군이 되어주는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2권에서는 특히 라비와 코너 그리고 카라가 계속하여 훌륭한 조연 역할을 하며 무엇보다 라비와 핍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 채 협력해나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울고 웃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스토리의 미스터리 시리즈를 원한다면 놓쳐서는 안 될 영어덜트 소설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핍” 시리즈 3권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핍은 라비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라비뿐이라고, 도움을 청했다.
“내가 너 대신 결정을 내려줄 수는 없어.” 라비가 말했다.
“그냥 해주면 안 돼?”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그건 오직 너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거야.” 라비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게 옳은 선택일 거라는 거야. 왜냐면 넌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고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내가 항상 옆에서 함께할게. 항상. 알겠지?”
“알겠어.”
핍은 라비와 전화 통화를 마치면서, 이미 결정은 내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핍의 선택은 이미 한참 전에 내려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외의 다른 선택은 아예 없었던 것일지도. 그저 누군가가 네 선택이 맞는다고 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p. 71~72)
놀라운 흡인력과 예상 밖의 결말, 완벽한 페이지터너 스릴러
홀리 잭슨은 꼼꼼하게 짜인 플롯으로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인 미스터리를 만드는 데 있어 예리한 통찰력과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페이지터너의 임무를 끝까지 완수한 소설이다.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부터 이미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예감케 하는 팟캐스트 오프닝이 시작된다. 시리즈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을 능숙하게 요약하면서 새로운 사건에 빠져들게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리틀 킬턴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아직 다 파헤치지 못한 치명적인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긴장을 고조시킨다. 군중심리가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또 주변의 평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살인자의 목소리는 분명 뭔가 다를 것이다. 살인자의 거짓말에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 어떤 미묘한 특성이 있을 것이다. 날카로운 톱니바퀴 아래 진실을 감춰둔 채 거짓말을 내뱉을 때,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어느 순간 뾰족하게 변하며 불안정하고 불규칙하게 비어져 나오는 목소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살인자와 마주하면 그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핍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p. 7)
선하고 똑똑하며 결단력이 강한 핍은 자신의 불안한 심리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는 군중의 시선 아래 그 압박과 싸워나간다. 예상 밖의 이야기 전개와 급변하는 상황이 사건을 더 악화시키고 조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지만 단순하게 보이는 줄거리가 그래서 더욱 스펙터클하게 흘러간다. 이번의 2권 미스터리와 전작의 사건이 교차하면서 그사이 죄책감과 복수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기도 하다. 홀리 잭슨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통해 십 대들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지 바라보고 이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