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늘 죽음 곁에 있었다
음악이 없는 장례식을 상상해 보았는가? 그런 장례식이 있다면 무척 쓸쓸할 것이고, 고인에 대한 애도와 남은 자에 대한 위로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에도와 위로. 한 사람의 삶을 기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온정과 희망을 전하는 것이 장례식의 뜻이라면 음악은 실로 커다란 역할을 감당하는 셈이다.
죽음은 엄연한 현실적 차원에서 음악가의 생계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730년 후원을 청하는 편지를 귀족 에르트만에게 보내면서 라이프치히 공기가 예년보다 좋은 탓에 장례식 수입이 줄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고 그의 전임자 쿠나우도 사람들이 비용을 아끼려고 음악 없는 장례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적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 음악이 늘 함께하는 것처럼,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 곁에도 음악은 항상 존재한다.
서울대학교 음악학과 오희숙 교수와 음악미학연구회의 회원들은 음악이 ‘노래한’ 죽음의 여러 모습을 다양한 에세이로 포착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되어 있다. 첫째, "작곡가들의 마지막 순간"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등 위대한 작곡가들의 최후를 다루는 전기적 스케치다. 둘째, "음악이 그린 죽음"에서는 작품 안에 ‘죽음’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다룬다. 쇼팽의 "장송 행진곡",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등 친숙한 곡들과 더불어 라이히, 리게티, 쿠르탁, 그리제 등 현대 작곡가의 작품이 다양하게 다뤄진다. 한편 3부에서는 음악과 죽음을 다루는 학술 논문 두 편이 번역 소개되었다. 킵 페글리는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통해 대중의 애도 현상을 집중적으로 탐구했고, 오드리 버거 카대니는 음악이 주는 애도/위로의 효과를 학문적으로 규명한다.
시대가 변해도 추모의 마음은 여전하다. 죽음 앞에 예술가들은 저마다 다르게 묻고 답한다. 그 사투와 창조의 과정은 삶과 죽음, 예술과 일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더 깊은 혜안을 줄 것이다.
죽음이란 보편적 주제로 전문가와 일반 감상자를 연결하는 책
죽음은 보편적 주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제2의 삶, 행복한 노후, 건강한 노년, 품위 있는 여가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노년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주위에서 죽음을 겪을 기회가 많아지고, 또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생각할 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의 이러한 변화에 맞게 애도하고 위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죽음에 대한 성숙한 태도, 고인의 존엄성과 남은 자들의 품위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술 체험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여가이기도 하지만, 인간다움을 가꾸고 보존하는 학교이기도 하다. 『음악, 죽음을 노래하다』는 이 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죽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예술, 음악을 통해 애도와 위안, 존엄과 품위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사나 음악 이론에 대한 책은 주로 전문가나 소수의 애호가를 위한 책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음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기에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학자, 연구자, 전문가들이 필자로 나서서 깊이 있는 전문 지식도 다뤄지지만, 집필 과정에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또 이 책은 다양한 작곡가와 작품을 아우른다. 죽음은 인간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죽음의 상황, 그에 대한 반응은 모두가 다 다르다. 가장 보편적인 동시에 개별적인 경험이 바로 죽음이다. 음악가들은 작품을 통해 인간 보편에 해당하는 추모의 마음과 더불어 그만이 겪을 수 있는 일회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을 동시에 다룬다.
근원적 질문으로 음악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책
죽음은 또한 인문학적 주제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 여기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음악미학연구회 소장 오희숙 교수(서울대)는 프롤로그에서 “죽음은 개인적인 사건인 동시에 사회적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전쟁과 사고 등 사회적 사건과 자연재해에 의한 죽음은 사망자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그 원인이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억울하다. 음악은 때로는 언어와 연결되어, 때로는 순수 기악음악으로 죽음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오랜 시간 부단히 담아 왔다. 특히 20세기 이후 많은 작곡가들은 역사적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작품을 내놓았다. ‘음악으로 희생자를 위로’하고 이들을 계속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음악들은 단순히 추모, 애도 또는 기도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역사적 메시지를 던진다. 사회의 불합리함과 무책임, 자연 재해, 참혹한 전쟁 등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들을 인식하고, 그 문제를 비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은 “사회적 정치적 비판의 파워풀한 역할”을 한다.
또한 장유라 박사는 에필로그에서 “크리스테바는 죽음을 성찰하는 ‘예술의 유용성’을 설파한다. 즉 그녀는 미술관에서 접하는 그림과 조각에서 죽음을 마주 대할 수 있다는 ‘죽음의 경험’을 말한다. 우리는 소설과 음악을 통해서 죽음을 바라본다. 언어가 주는 ‘사실성에 대한 묘사’만큼은 아닐지라도 소설가나 작곡가가 작품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 작품을 서술하고 작곡하는 과정과 그의 삶을 추체험Nachleben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죽음을 경험한다”고 적는다.
죽음의 순간으로 들여다 보는 작곡가의 인생
『음악, 죽음을 노래하다』의 1부는 작곡가들의 마지막 순간을 추적한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곡가의 만년을 스케치하듯 그려내는 에세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각 인물들의 최고 정수를 반영한다. 슈베르트처럼 커리어의 정점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든, 아니면 슈만처럼 격리와 금지 속에서 서서히 창작의 기운을 잃어갔든 관계없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그의 성취와 인생 전체를 반추하게 만든다. 이성률은 모차르트 독살설과 같은 흔히 알려진 이야기를 화제 삼아 그의 말년에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세세히 서술한다. 최은규는 베토벤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영웅다움을 키워드 삼아 그의 만년 음악의 특징을 ‘박애주의’의 승화로 읽어낸다. 또 말러를 다룬 글에서는 죽음에 영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넘어서려는 말러의 정신세계를 서술한다. 정이은은 젊은 슈베르트가 죽음 앞두고 주체적인 예술적 도전을 감행했음을 강조했고, 이와 유사하게 박성우 또한 브람스의 주체적인 고독과 죽음 앞의 의연함을 인상적으로 서술한다. 김호정은 많은 오해를 받아온 슈만의 마지막 작품 〈유령 변주곡〉을 통해 단절 속에서도 끝까지 음악을 붙들고자 했던 작곡가의 의지를 드러낸다. 전정임은 1부의 유일한 한국 작곡가이자 현대 작곡가인 윤이상의 사례를 통해 실제 죽음을 경험한 시기였던 옥중에서의 인생관과 죽음의 충격을 이겨 낸 후 정립된 인생관이 어떻게 달라졌고, 또 작품에 서로 다르게 반영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작품 속의 죽음: 극복, 기념, 추모, 기억, 애도, 성찰, 사회적 책임
1부가 작곡가의 인생에 집중된 ‘전기적 에세이’ 모음이었다면, 2부에서는 실제 작품을 다루는 ‘작품론 에세이’가 펼쳐진다. 정다운은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장송행진곡」에서 쇼팽 음악의 특성이자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와는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유머의 요소를 읽어낸다. 또 지형주는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에서 동경의 대상이자 안식으로서의 죽음이라는 낭만적 관점을 설명한다. 이정환은 슈만의 가곡 〈레나우 시에 의한 여섯 편의 노래 그리고 레퀴엠〉을 아르스 모리엔디, 즉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형상화로 설명한다.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예술 작품은 사는 법/죽는 법의 의미심장한 비유가 되는 것이다. 김소이는 리스트의 〈단테 교향곡〉을 단테 원작과 연결지어 고찰하며 방대한 작품의 핵심 시구의 인상을 교향시적으로 옮겨낸 작곡 방식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위의 네 사람의 작곡가들이 비교적 친숙한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라면 다음에는 모더니즘과 현대 작곡가들이 그려낸 죽음의 모습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우혜언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상실의 트라우마, 곧 망각과 죄의식을 죽음의 문제와 연관지어 분석한다. 김미영은 베르크의 유명한 오페라 〈보체크〉를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회고발적 작품으로 읽어낸다. 김서림은 라이히의 〈다른 기차들〉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파국 이후 현대 음악에 두드러지게 된 추모의 경향을 인상적으로 서술한다. 신인선이 다룬 리게티의 〈위대한 죽음〉, 오희숙이 다룬 쿠르탁의 〈짧은 성무일과-세르반스키를 추모하며〉 또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가 자기 성찰과 닿아 있음을 지적한다. 노재헌은 그리제의 〈문턱을 건너기 위한 네 개의 노래〉를 통해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간적 영성의 회복을 새로운 현대의 경향으로 서술한다.
이들 작품론적 에세이들은 더러 전문적인 지식들을 요구하는 음악 분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바라보고 탐구하는 여러 가지 시선이기도 하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 20세기의 참상과 폐허는 문명과 인간성, 예술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켰고, 격렬한 자기 부정과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이들 에세이들은 막연히 현대 음악에 대한 낯섦을 느껴온 독자들에게 하나의 이해의 실타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애도와 추모는 곧 현대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해외 학술 논문 번역 수록
한편 3부 “죽음에 대한 심층 연구”에는 음악과 죽음에 관한 해외 석학의 논문 두 편을 번역해 실었다. 킵 페글리의 논문은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어떻게 공식적인 추모의 자리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 되었는지를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서술한다. 반복과 무시간성을 특징으로 가지는 이 곡은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느끼는 ‘부유하는’ 느낌을 전해주어 자연스러운 애도를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면서도 “음악은 이중으로 위험하다. 음악은 서로 소통하고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은 있지만 서술하는 능력은 없다. 음악은 외부 사건에 대한 해설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우리의 감정을 휘젓는 능력이 너무 자주 이상화되어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고 지적함으로서 이러한 애도의 음악이 오히려 공동체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오드리 버거 카대니는 전통적인 음악의 효과라 여겨져 온 안정과 완화의 효과를 두 가지 방식으로 분석한다. 한편으로는 음악과 예술이 죽음의 필연성을 강조함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의 화해를 촉구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예술 작품을 통해 죽음이라는 개념과 안전하게 만나는 장을 제공함으로서 죽음의 의미를 변형시키고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적 성찰은 막연하게 여겨졌던 음악의 치유 효과나 애도의 기능 등을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한다
여러 필진들이 쓴 에세이의 모음집이지만, 이 책은 명확한 구심점을 지니고 있고, 논의와 지평에서의 일관성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죽음이 공통의 주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사건이 음악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관심사로 모든 에세이를 수렴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사건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커다란 사건은 남은 자들에게 모종의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장례식 음악이든, 테러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담은 현대 음악 작품이든 죽음을 다루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더 나아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의 말씀은 음악의 전통적인 역할인 공감과 애도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삶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죽음의 모습은 그러한 전통적 역할뿐 아니라 죽음을 통한 해방과 갱생, 죽음의 기념, 죽음을 통한 고발 등 남은 자들의 사회를 향한 음악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