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읽어도 읽히지 않은 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름 하나만 내세워서는 기록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찾아 헤매다 보면 응당 마주치게 되겠거니, 어떻게든 쓰게 되겠거니 생각했던 이야기들에는 놀랍게도 ‘하나의 이름’이 없었다. 아프가니스탄도, 위구르도, 스레브레니차 집단살해도 그랬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이름이 아니라 통계의 거대한 숫자로, 혹은 익명으로만 존재했다. 차마 다 담지 못한 그 이야기들이 아직 이 세상엔 묵직하게, 또 불안하게 고여 있다. 쓰지 못한 이름도 읽히길 바랄 뿐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나 이미 내 세계에는 안전하고 무사하지 못한 이름들이 들어와 있다. 시선을 들어올린다. 주변으로, 바깥으로. 이제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내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얻었던 것들-평화라는 단어를 모르고 평화롭게 자란 어린 시절, ‘자연 보호’나 ‘물 부족’ 같은 말을
학교에서 포스터나 표어 그리기를 할 때만 떠올려도 되었을 만큼 늘 자연 속에서 풍요로웠던 모든 날들, 빛과 어둠을 물리적 단어로만 이해해도 되었던 그 모든 깜빡거리던 시간 같은 것들-을 당연스럽게 받지 못하고 사는 이름들을 생각한다.
여기가 나의 출발점이다. 어떤 이름들을 바라보며 나의 망을 짜 내려가기 시작했다. 촘촘하고 탄력 있는 어떤 것이 되기엔 아직 한참 모자란 나의 망은 얼기설기 해시태그만한 크기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은 아시파였다. #JusticeForAsifa라는 해시태그를 보고 어딘가 쿵 맞은 것만 같던 그 순간 이 글은 시작되었다.
이 글에 있는 이름들과 삶의 한 조각씩 닮아 있던, 친구라고 불렀던 이름들을 생각하며 썼다. 세상이 좀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다. 아이들에게 또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에게.
가급적 21세기 위주로, 멀리 가도 20세기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15명의 이름을 찾았다. 어떤 이름들의 이야기는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좀 더 먼 곳에서 끌어왔다. 신문에 싣는다면 국제 면부터 사회 면까지 다양한 데 들어갈 내용들이 섞여 있지만,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