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만큼 가깝고 가족만큼 먼
가족만큼 나를 아끼고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한편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도 가족일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주인공 수봉이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수봉이에게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 수봉이는 지금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할머니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아무도 몰래 할아버지의 약을 빼내고 있다. 이런저런 병이 많은 할아버지는 꼭 먹어야 하는 약이 많은데 그중 일부를 빼고 할아버지에게 준 것이다. 믿었던 가족 할머니가, 나의 다른 가족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려고 하는 비밀을 알게 된 수봉이. 젊은 날, 돈벌이를 하기는커녕 술 마시고 가재도구를 부수기 일쑤였던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일까, 남들 가는 온천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가고 병수발을 해야 하는 자신의 불쌍한 신세를 위로하기 위함일까. 수봉이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다 결국 또 하나의 비밀을 만들고 만다.
비밀, 하나 둘 셋
수봉이의 비밀은 그래서 할머니의 비밀과 맞물려 있다. 할머니의 비밀을 덮어 버리기 위해 만들어 낸 비밀이므로. 마침 같은 반 친구의 친구에게 있었던 일을 통해, 치매 노인은 요양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봉이는 인터넷을 찾아보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할아버지를 ‘치매 환자’로 만들어서 할머니를 해방시키고 할아버지를 요양 병원으로 보내 제대로 치료받게 만들고자 하는 계획! 하지만 할아버지는 치매 환자가 아니다. 여기저기 아파도 오히려 수봉이보다 정신이 더 또렷하다. 과연 수봉이의 계획은 성공할까? 비밀은 지켜질 수 있을까?
가슴 먹먹한 가족 이야기
애증의 대상인 남편의 약을 빼내는 할머니의 비밀과 그런 할머니의 바람을 이루어 주기 위한 손자 수봉이의 계획, 그리고 가족에게 구하는 사죄이자 사랑의 표현이었을지 모르는 할아버지의 비밀까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 모두는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수봉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첫 장으로 돌아가 읽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수봉이의 마음을,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일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심리 묘사나 상황 설명이 세밀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하며,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한다. 특히 불안하기만 한 수봉이의 미래가 긴장감 넘치게 묘사되어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의 공감을 이끌 것이다. 무엇보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가 실제로 어딘가에 수봉이와 가족이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이 빼어남을 증명하고 있다.
얄궂은 비밀, 얄궂은 삶
우리 청소년들은 사실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다. 그러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는 더더욱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필수템’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청소년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는 흔치 않다. 집안 배경이나 상황이 우리 아이들과 사뭇 다르다고 할지라도, 내 삶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 주위를 둘러보아야 함은 당연히 밟아야 할 수순이다. 그렇기에 수봉이의 이야기는 의미가 깊다. 혹 나와 수봉이의 삶이 극명하게 다르더라도, 혹 나와 수봉이의 삶이 비슷할지라도, 모든 삶은 소중하고, 가족은 세상 속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며, 각기 다른 삶을 살아내는 타인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