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증언하다!
역사적 순간에 존재한 노래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3년, 무려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한국 방송사에 새 역사를 쓴 프로그램이 있다. 다름 아닌 KBS의 휴전 30주년 특별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프로그램의 타이틀곡으로 쓰여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린 노래가 두 곡 있으니, 바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와 「잃어버린 30년」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 국민들이 다시 상봉하는 장면에 삽입된 이 두 곡은 결국 우리 민족의 한이 응축된 노래로 거듭난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둔 5월 5일 새벽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파된다. 유력 대선 후보이자 민족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해공 신익희의 서거 소식이었다. 안타깝게도 신익희는 유세를 위해 전주로 향하던 중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많은 국민이 이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졌다. 이 시기 민족지도자를 허망하게 상실한 우리 국민들의 슬픔을 달래준 노래가 있으니 바로 「비 내리는 호남선」이다. 신익희 서거 3개월 전에 발표되어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이 노래는 놀랍게도 신익희 서거 이후 전국적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그로 인해 작사자 손로원, 작곡자 박춘석, 가수 손인호는 경찰에 잡혀가 고초를 당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1944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끝까지 저항하다 끝내 옥에서 순교한 목사 주기철이 다섯 번째로 일제 경찰에 끌려가던 날이다. 주기철 목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아온 산정현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노래를 한 곡 부른다. 그 노래는 주기철 목사가 생전에 그토록 좋아했던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였다.
이처럼 역사적인 순간과 함께한 노래들이 있다. 그 노래들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그 노래를 부른 민중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역사적 순간에 존재했던 노래를 렌즈 삼아 한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본다. 1980년대 군사정부 시절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다소 어두운 시기의 이야기지만, 독자들은 보다 친숙하고 흥미롭게 우리의 역사를 곱씹게 될 것이다.
역사 교과서는 담지 못한 우리 사회의 내밀한 마음,
‘민중의 열망’을 조명하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결국 당대를 살아간 민중들, 우리 보통 사람들의 열망이다. 애석하게도 역사 교과서가 포착하지 못한 그것을 노래는 언제나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에는 1954년 부산의 풍경이 애절한 감정으로 담겼고, 임방울의 목소리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국민들의 한스러운 정서가 담겼다. 군사정부 시절 금지 조치가 된 「아침 이슬」 「미인」 「왜 불러」 등의 수많은 명곡들은, 노래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 때문에 당시 사회 분위기와 우리 민중들의 저항 정신을 말해주는 시대의 산증인이 되었다. 독자들은 이와 같은 수많은 명곡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시대정신, 시대적 과제를 읽게 될 것이다. 노래와 함께 역사를 되짚어가는 이 책의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 부모님들, 엄혹했던 시기를 살아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삶을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