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를 여는 첫 글은 이성철 교수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이 글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통의 실마리를 ‘언어’에서 찾으며 다른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인 적이 있는지, 단지 묻고 듣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묻고 듣는 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지 질문하며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통의 완전체는 ‘말 - 글 = 얼’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지는 실천이 된다.
호밀밭 장현정 대표는 「모든 것에 금이 가 있다. 그래야 빛이 들어온다.」를 통해 소통의 어원과 그 진정한 의미에 대해 환기한다. 소통(疏通)의 소(疏)는 성기게 짠 직물의 올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라 성긴 올 사이로 거침없이 통과하는 데서 유래했다. 엉성하게 성긴 서툶이 소통의 기본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서로 스며들 수 있는 틈이 있어야 통할 수 있는 그것은 서로의 모자람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으면서 서로에게 흐르고 함께 두루 퍼져나가는 것이다.
정희준 교수의 「소통 금지 사회의 기원, 그리고 매개 소통 사회의 이면」은 ‘허락받은 질문’, ‘규정을 준수한 소통’만 가능하게 하여 의도치 않게 획일적인 선택을 강요한 한국사회가 ‘소통’보다 ‘연결’이 더 중요하게 된 원인과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기대했던 미디어 민주주의가 착각이었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황규관 시인의 「자신과의 대화로서의 소통」은 ‘우리가 사는 풍요의 시대 자체가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시를 쓰게 하는 현실적 배경’이라며 우리가 돌아가야 할 길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나 고성능 디지털카메라에 기대려는 문학적 시도들에 맞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형곤 교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이유가,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인정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질 때, 우리 사회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기준 교수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존재와 소통」에서 가상의 세상에서 가상의 존재와 공존하고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질문하며, 이 외에도 류영진 교수가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에서의 소통에 대해 살펴본 「일본적 소통으로 나아가는 한국, 한국적 소통을 시도하는 일본」, 강동진 교수가 공공건축을 통해 소통의 세 가지 사례를 보여주는 「큰 테이블에서 시작된 소통 이야기」, 소통은 먼저 트인 사람이 되는 ‘실천’을 한 뒤에야 찾아오는 변화라며 공감의 예술 시대를 이야기한 조봉권 기자의 「나는 왜 늘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할까」, 유숙 송국클럽하우스 소장이 지역사회와 정신장애인이 함께하는 희망공동체를 꿈꾸며 쓴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한국 사회에 더 많은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역설하는 고윤정 영도문화도시센터장의 「소통의 기술」, 세대 간의 소통을 솔직하게 고민하며 내밀한 경험을 소재로 소통에 대해 고민한 김지현 소설가의 「흰 콩떡 먹기」 등 다양한 소재와 관점의 사색을 만나볼 수 있다. 고정 원고로 건축 분야에서는 차윤석 교수의 「공간, 그리고 소통」과 이한석 교수의 「육지와 바다의 매개 공간, 워터프런트」를, 미술 분야에서는 김종기 관장의 「소통: 억압, 차별, 배제를 넘어」를, 영화 분야에서는 조재휘 평론가의 「〈접속〉1997 에서 〈헤어질 결심〉2022으로」를, 전통 분야에서는 심상교 교수의 「신은 존재한다. 고로 나는 소통한다.」 를 실었다. 이번 호에 실린 17편의 글을 통해 독자들이 ‘소통’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고 한 걸음 옆으로 옮겨 지금과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ㆍ 머리로 하는 인문학이 아닌 가슴을 움직이는 인문학,
그리하여 살아 움직이는 ‘실천의 인문학’을 지향하며
인문무크지 ‘아크 ARCH-’는 가벼운 일회성의 텍스트들로 둘러싸인 채 질주하는 세계에서 보다 단단한 호흡을 견지하며 여러 전문가와 함께 매호 정해진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과 세계의 지금 현재를 톺아본다. 건축의 기본이 터를 다지는 일인 것처럼, 유행에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 현실과 인문 담론을 환기하고 넉넉하고도 단단하게 인간과 세계의 기본을 다지려 한다.
인문무크지 아크는, archive, architecture, archi 와 같은 단어가 공유하는 인간과 세계의 근원에 대한 성찰을 창간 취지로 삼아 만들어진 이름이다. 문학, 역사, 철학을 기반으로 예술, 공간, 도시, 건축, 미디어, 일상생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문적 고양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서체 디자이너 한동훈이 디자인한 ‘아크 ARCH-’ 제호의 로고타입은 아크가 가진 모던하면서도 진중한 인상을 표현한다. 특정한 유행이나 흐름에 치우치지 않은, 속 공간을 꽉 채운 얇은 고딕을 기본으로 아크만의 독특함을 담은 서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