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타협의 시기에서, 혼돈 단계를 거쳐 충돌과 공존의 갈림길에 서다
1971년 탁구 외교로 시작해 1976년 수교에 이른 미국과 중국 관계는 1991년 옛 소련 해체로 조성된 ‘탈냉전 시기’에 큰 전환을 맞았다. 이후 30년 동안 미국과 중국은 협력의 시기를 거쳐 상호의존과 경쟁이 혼재된 복합적인 단계를 지나 현재 충돌과 공존의 갈림길에 섰다. 『탈냉전기 미중관계-타협에서 경쟁으로』는 중국 정치·외교 및 미중관계 전문가로 꼽히는 저자가 30여년 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진 외교, 무역, 군사, 기술 등 모든 분야의 교류와 경쟁 사료를 토대로 양국의 길항 관계가 진화해온 과정을 타협과 경쟁이라는 두 개의 프리즘으로 분석한 ‘미중관계 종합해설서’이다.
저자는 미국과 중국 관계를 분석하는 두 가지 논리 곧 현실주의적 시선과 자유주의적 시각 어느 한 가지로 미중관계를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미중관계를 분석할 때는 양국의 국내적 요인이 외교정책에 미치는 비중이 증대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태도를 견지할 때 충돌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지난해 말 미-중 교역량이 역대 최대에 이른 상호의존 상황을 제대로 풀이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타협’ ‘복합성’ ‘경쟁’ 등 3부로 나누고 서론·결론을 포함해 모두 10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은 한 편 한 편의 충실한 논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책 전체는 저자가 그동안의 연구 성과들을 공들여 집대성한 만큼, 일관된 분석틀을 토대로 시대별·주제별로 미중관계를 분석한 저자 고유의 관점과 전망을 담아내고 있다.
‘예정된 전쟁’ vs ‘협력적 경쟁관계’
탈냉전기 미중관계를 분석하는 논의에는 크게 두 흐름이 있다. 하나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설파한 ‘현실주의적 논의’이다. 미중관계에서 경쟁과 충돌을 강조하며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가 주축을 이룬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면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냉전이 종식된 1991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의 16배에 이르렀지만 세계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격차가 3배로 줄고 2014년에는 1.6배로까지 격차가 좁혀졌다. 국력 격차가 25년 만에 10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중국은 2010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등극하고, 2011년에는 미국을 추월해 최대 제조업 국가로, 2012년에는 세계 최대 교역국으로 올랐다. 하지만 미국이 “2023년 GDP에서 미국을 앞설 것”이라는 현실주의 진영의 전망은 빗나갔다. 지난해 역대 최대에 이른 미-중 교역규모는 경쟁 및 충돌과는 거리가 먼 현상이다.
현실주의적 논의의 대척점에는 ‘자유주의·제도주의적 논의’가 있다. 역시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와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상』을 저술한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가 주창하고 있다. ‘협력적 경쟁관계’를 강조한 아이켄베리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 패권의 종식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종언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이 충돌과 전쟁을 억제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미중관계는 현실주의적 논의나 자유주의적 논의만으로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게 전개돼 왔다. 특히 최근 강경 일변도의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조차 ‘경쟁의 체계화’ ‘탈냉전기의 종언’을 선언하는 등 미중관계가 이론적·구조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저자는 “미중관계를 분석할 때 인식과 활용이라는 행위자 변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진 것”이라며 “곧 양국의 국내적 요인이 외교정책에 미치는 비중이 증대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관여-타협의 시대
선임(아버지) 부시 행정부가 1989년 천안문사태와 1991년 옛 소련 붕괴에도 불구하고 대중국 정책의 기조를 ‘관여’로 일관한 데 대해 클린턴은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한 대중정책’을 표방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잠재적 경쟁국에 대해 연계를 형성함으로써 민주와 자유를 확산시키려는 ‘관여와 확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1995년 대만 해협 위기가 오히려 관계 개선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해 이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이 진행됐다. 그 사이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폭격 사건(1999년)과 미국 정찰기-중국 전투기 충돌사건(2001년) 등 굴곡이 있었음에도 중국이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에 공식가입함으로써 미국의 ‘관여-타협’ 정책이 정상 작동했음을 보여줬다. 이런 정책 기조는 후임(아들)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까지 이어졌다.
저자는 “미국의 관여는 중국에 혜택을 제공하려는 의도라기보다 자국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에 추구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통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1980년대 말 미국에 근접했던 일본 경제와의 격차를 벌였다”고 짚었다.
중국은 이런 미국의 관여 정책에 대해 ‘중국은 평화적 수단을 통해 발전할 것이고 중국의 발전은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화적 부상론’(和平堀起)의 기치 아래 타협으로 대응했다. 상호의존이 증대하면서 미국의 대중 투자와 양국 교역이 증가하고 중국은 대미 교역 흑자를 내며 최대 채권 보유국 지위를 얻게 됐다. 이 시기 ‘G2’(2006년 페색), ‘차이메리카’(2007년 퍼거슨) 등의 개념이 등장했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적 주도권을 유지하려 들었고 중국은 이에 대해 미국의 주도권을 경계하며 자율성을 추구하려 들면서 양국 간 타협에는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2년 방미 중 장쩌민이 밝힌 ‘화이부동’(和而不同·조화를 추구하되 따라하지 않는다)’은 이 시기 중국의 대미 관계 기조(스탠스)였다.
복합성의 시대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미국과 중국 관계에도 변화를 촉발해 위기 극복을 위한 협력이 강화되는 한편에서는 전략적 이견이 대두되는 모양을 띠어갔다. 저자는 “이 시기는 협력과 경쟁 국면이 병존하는 단계로, 시기별로 협력과 경쟁이 교차 부각되는 복합적인 관계 양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인권문제 등 마찰을 회피하면서 전략·경제 대화와 전략적 보장 구상을 제기하고, 이에 대해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미국의 관여를 미국의 취약성으로 인식하면서도 미국과 협력하고 이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려는 양동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오바마 1기 동안 양국 정상은 12차례나 회동을 했다. 1979년 수교 이래 오바마 전까지 30년 동안 양국 정상 간의 만남이 24차례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양국의 상호의존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12년 1월 미국 국방부가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재배치”를 천명하는 등 ‘아·태 재균형’ 정책을 제기하고 2021년 말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창설하는 등 미국은 중국의 확장을 제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2012년 말 ‘중국의 꿈’(中國夢)이라는 구호를 제기하며 ‘새로운 형태의 강대국 관계’와 ‘중국식 강대국 외교정책’이라는 2개의 외교 구상으로 맞대응했다. 이런 구상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전략구상) 제기 등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추진, 남중국해에서의 권리 수호, 군사력 건설 등으로 구체화했다.
또한 경제적 재균형 이슈가 경제적 통합에 대한 반대와 보호주의에 대한 지지를 증대시켜 양국 관계의 안정판 구실을 하던 경제 관계가 경쟁 국면 조성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양국 사이에 경쟁의 국면이 분명해지면서 양국 관계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쟁의 시대
임계점 평가를 받던 양국의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트럼프가 ‘강대국 경쟁’을 선언하면서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경제적 분리 정책을 추구한 데 대해 시진핑은 평등관계 구축 의지를 꺾지 않고 맞대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분리 시도는 과학기술 분야까지 확대됐지만 군사적 분야의 경쟁은 배제됐다. 중국도 경제적 경쟁과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시도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집중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 작용-반작용 사이클이 작동했지만 강대국 경쟁을 세력전이와 연관시키고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강조한 현실주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2020년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의 ‘경쟁’을 강조해 경쟁이 트럼프의 일탈이 아닌 미국 내의 합의임을 표출했다. 바이든은 비록 ‘경쟁의 체계화와 협력 복원’ ‘경쟁 관리’를 내세웠지만 협력 복원보다는 관세 유지, 첨단기술 수출 및 투자 규제, 대만 지원 및 중국 군사력 증강에 대한 대응 등 경쟁에 치중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중국 또한 경쟁을 현실로 인정하고 ‘유엔 주도의 국제체제와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제기함으로써 미국이 강조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s Based Order)의 정당성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2022년 11월 발리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외교, 경제금융, 보건위생, 농업과 식량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와 대화를 회복하는 데 합의했지만 충돌을 회피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저자는 “현실적으로 양국 관계의 양상과 관련해 가능성이 가장 큰 선택지는 경쟁의 관리를 통해 경쟁하는 상황에서도 공존하거나 반대로 경쟁의 관리에 실패하고 신냉전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미래 시기에 미중 양국이 경쟁의 관리를 통해 공존하든 아니면 신냉전에 돌입하든 양국 관계는 탈냉전기와 비교할 때 훨씬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