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둑 빗방울이 떨어져요.
펄쩍 개구리가 뛰어올라요.
또로롱 버들잎에 빗방울이 맺혀요.
쏴아아 빗줄기가 땅바닥을 때려요.
후드득 백로가 초록 비를 흩뿌려요.
철썩이는 파도, 하얀 모래사장, 알록달록한 비치볼……, 상상 속 여름은 너무나 낭만적이지만, 실제 여름은, 그것도 해가 쨍쨍한 한여름은 너무나 덥다. 삐질삐질 배어 나오는 땀에 셔츠를 벗어도 별 무소용, 모기는 또 왜 그리 앵앵 달려드는지. 끈적끈적 짜증이 올라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어른들의 한마디가 이어진다. “비 오려나 보다.”
《여름비》는 한창 더운 날, 예고 없이 쏟아지며 순식간에 주변 공기를 뒤집고 온통 빗소리에 빠져들게 한 뒤 불현듯 활짝 개어 사방 만물을 바꿔 놓는, 여름비의 생명력 넘치는 청량함을 노래한 시 그림책이다. 축축 늘어진 지친 풀과 꽃과 작은 벌레 들이 여름비가 그친 뒤 얼마나 푸릇푸릇 반짝반짝 꼬물꼬물 되살아나는지 아는가!
■ 《여름비》 가 피워 낸 무수한 생명을 만나요
하얀 바탕에 파란 수국과 초록 개구리, 산뜻한 표지를 넘겨 첫 장을 펼치면 모기향이 빨갛게 제 몸을 태우며 타고 있다. 모기향 연기는 꾸불꾸불 모기 뒤꽁무니를 쫓아가고, 평상 위에는 베어 문 빨간 수박이 먹음직스럽다. 어디 숨었다 나온 걸까, 단맛을 놓칠 수 없는 개미들이 졸졸졸 수박 접시로 기어간다. 무심하게 벗어 던진 셔츠, 뚝 분지른 옥수수, 부채…….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면, 이어지는 외마디 감탄사.
“어?”
그리고 투툭 떨어지는 빗방울. 파란 하늘이 들어앉은 물 위로 톡톡톡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동그랗게 번져 나간다.
“와 비다!”
소금쟁이가 폴짝 뛰는 물 위에, 보라색 도라지꽃에, 낭창낭창 버들잎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벌써 쏴아아 수직으로 꽂히는 빗줄기. 금방 하늘을 보라색으로 물들이며 땅바닥을 때린다. 쿠르르릉, 시간이 멈춘 듯 온통 빗소리에 빠져들고…….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틈에 잔잔한 보슬비로 소곤소곤 안개비로 바뀌어 있다.
더위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변 공기도 확 달라졌다. 비 맞은 모든 만물이 새로운 생명력으로 힘차게 반짝거린다. 본연의 제 색을 뽐내는 가지랑 토마토, 호박꽃 사이 모습을 드러낸 사마귀와 무당벌레, 물방울 목걸이에 매달려 곡예를 하는 거미……. 범부채꽃은 더욱 선명해진 범 무늬를 뽐내고, 달개비는 한층 짙어진 파랑색을 자랑한다. 잠자리가 포르르 날개를 털며 물방울을 흩뿌리고 커다란 토란잎에 모인 물방울들이 데구루루 주르륵 미끄럼 탄다. 숨어 있던 달팽이가 천천히 기어나오고 신난 아기 오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우리 꽃밭에 이렇게나 생명이 많았다고?
환희! 비 그친 여름 꽃밭은 그야말로 잔치다. 하늘에 무지개가 걸리고, 활짝 핀 수국 사이로 개구리들이 폴짝폴짝 튀어 오르면, 더는 참을 수 없다. 아이도 벗어 던진 셔츠를 걸치고 ‘같이 놀자’며 첨벙 물웅덩이로 뛰어든다.
■ 투명한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요
《여름비》는 생명력 가득한 여름비, 그 비가 그친 뒤 한층 살아난 자연 만물을 꼭 필요한 단어만으로 청량하게 펼쳐 보이는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달개비, 수국, 나팔꽃, 아기 오리, 개구리…… 저마다 생명들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연하늘빛부터 물들어 버릴 듯 깊은 파랑까지 모든 초록과 파랑의 시원함은 가슴을 맑디맑게 씻어 주는 것만 같다. 노랑 핑크 보라 파랑이 다 담긴 수국의 우아함은 말해 무엇하리!
《여름비》는 그동안 화가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온 신경아 작가의 첫 그림책이다. 신경아 작가는 특히 리듬감 있는 선과 맑은 색이 돋보이는데, 캔버스에 전통 한지를 여러 겹 붙인 장지를 바르고 유화 물감에 오일을 섞어 칠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 결과 동서양의 재료가 조화를 이루며, 빗방울은 환히 비치는 유리구슬 같고, 꽃들은 뚜렷하면서 화사하다. 물감이 한지에 스미는 부드러운 느낌과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느낌이 한 장면에 그대로 살아 있어 눈이 정말 즐겁다.
발이 젖는다고 투덜대지만 말고 비 그친 뒤 물기 머금은 길가 풀잎이 얼마나 새파란지 꽃잎이 얼마나 고운지 들여다보자. 주변 만물이 내뿜는 소리 없는 아우성, 그 벅찬 생명력이 눈에 들어온다면 앞으로 정말 즐거워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