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본다는 건 서로를 담는다는 것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던 까만 기차, 머리칼이 쭈뼛해지는 엄청난 소리와 땅으로 전해지던 진동, 그리고 저 멀리까지 이어지던 오래토록 비었던 철길이 생각납니다.
그땐 시시한 하루하루였습니다. 농사일 돕고 학교 다니고 매일이 비슷했어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저 멀리 이웃마을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던 기차처럼 모든 것들이 저를 가슴 뛰게만듭니다.
보리밭 위를 달리던 바람, 여름과 겨울,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냇가, 장독대 아래 채송화, 타작하는 날 짚단 나르며맡았던 가을 냄새도요.
동시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마터면 이토록 고맙고 신기한 것들을 놓칠 뻔 했으니까요.
-「시인의 말」 부분
「선반」은 동시집의 제목인 ‘밑줄 지우면 큰일 나’를 품고있는 작품이다.
빵집의 선반=밑줄이라는 이 은유는 중요한문장이나 단어 밑에 밑줄을 치는 일반적인 서술 행위로 연결된다.
그런데 빵집에 있는 빵 중 중요하지 않은 빵은 없다.
이를테면“밤식빵”은 맛있고“곡물식빵”은 별로고, 하는 식의 차등을 두지 않고, 나열된 모든 빵, 케이크, 잼 밑에 모두 밑줄이 똑바로 그어져 있다.
이“밑줄”은 도중에 끊을 수도 없고 선택적으로 일부만 그을 수도 없다는 점에서 끈끈한 연대의식의 한 발현에 가까워보인다.
지금까지 읽어본 이 책의 동시를 떠올려보면 이 밑줄이 시인의 올곧은 시선을 닮았고 모든 대상을 떠받치고 있는 시인의 마음을 닮았다.
그 마음이 「눈부처」에서 “마주 본다는 건/ 서로를 담는다는 것// 자꾸 담고 담다가 마침내 닮는 것”이라는 말에 내가 그어 놓고 싶은 밑줄일지도 모르겠다.
황남선 동시가 품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온도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대상에 밑줄을 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해설 「이 모든 시선은 사랑하는것들을 떠받치기 위해 반듯하게 그어놓은 밑줄」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