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무라카미 하루키 만화화 프로젝트
프랑스 예술가들이 선사하는 기꺼운 충격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그 명성에 비해 영화, 연극 등으로 각색된 수가 많지 않다. 특유의 환상적 서사를 이미지로 연출하기 어려운 탓인지, 각색하더라도 거의 새 작품으로 탈바꿈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은 기념비적 프로젝트다. 프랑스 만화가 PMGL과 아트 디렉터 Jc 드브니는 독창적 이미지 연출을 선보이면서도 원작 소설의 스토리와 인물, 대사 등을 왜곡 없이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본래 작품 각색에 방어적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들의 작업은 흔쾌히 허가해,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만화화되어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이 탄생했다. 일본에서 최초 출간 후 프랑스와 미국을 거쳐 이제는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프랑스어권 국가의 만화책은 ‘방드 데시네(Bande Dessinee, 줄여서 BD)’라 불리며 여타 국가의 만화와 다른 독자적 스타일을 자랑한다. 풍부한 대사와 내레이션, 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 정교한 그림으로 대중적 이야기뿐 아니라 문학과 역사와 철학처럼 심도 있는 주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예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에서도 그 특징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원작의 문장들을 손실 없이 담아내 하루키 소설 특유의 글맛을 보존하는 한편, 창의적인 컷 분할, 디테일한 그림에는 애독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의미와 장치를 가득 채웠다. 권마다 그림체를 다르게 해 단편소설 각각의 분위기를 살렸다. 작품마다 달라지는 연출법과 색감은 ‘하루키 월드’의 다채로움을 느끼게 한다.
‘믿고 읽는’ 하루키 번역가들의 총집합
번역가 5인이 오롯이 살려낸 문장의 맛
하루키 소설은 늘 베테랑 번역가의 손을 거쳐 국내에 소개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은 하루키 소설을 국내에 소개해온 여성 번역가 다섯 명이 작업했다. 번역가로서의 공력과 ‘하루키 월드’에 깊이 머무른 경험으로 원작 소설 그 이상의 읽는 재미를 살렸다.
[줄거리]
“확실했습니다.
그 파도는 생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괴담회에 모인 사람들. 일곱 번째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닷가 마을에 거주하던 어린 시절, 각별하게 지내던 K와 얽힌 사연이다. K는 유약하고 말이 어눌하지만 그림에는 빼어난 재능을 보인 친구였다. 어느 날 마을에 태풍이 찾아온 날, 태풍의 눈 속에 들어온 순간의 잠잠한 바다를 보려고 남자와 K는 함께 해변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을 따라다닐 공포를 마주한다.
[추천사]
김난주 번역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적 단편소설 아홉 편이 만화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단편 만화선입니다. 프랑스 특유의 극적인 희화가 처음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지만, 볼수록 그 표현의 적절함이 설득력 있게, 정감 있게 다가와 소설을 보다 입체적으로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네요.
홍은주 번역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은 지역과 언어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하게 변주되어왔습니다. 프랑스 만화와 만난 이 아름다운 작품은 그 창조적 시도와 실험이 어디까지 왔는지 잘 보여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독자에게도, 새로운 독자에게도 기쁜 발견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권남희 번역가
그림체가 낯설어서 선뜻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한동안 감상만 했습니다. 그러나 번역을 하다 보니 이보다 하루키 작품과 잘 어울리는 그림체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선 하나조차도 하루키스러워서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양윤옥 번역가
《1Q84》 시리즈의 어딘가에 너무 새것인 옷을 입고 나가기 싫어 베란다에 며칠 방치하여 구깃구깃해진 뒤에야 입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PMGL의 그림을 보면서 그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스토리의 정곡을 찌른 작화는 모범 사례가 될 만합니다. 진지하고 싶지 않고, 휩쓸리고 싶지 않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뭔가를 꼭꼭 숨겨 이야기하고 싶을 때, 그 방법을 이 귀한 책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권영주 번역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평범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평범한, 어느새 생활에 붙들려버린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무라카미 하루키가 썼을 때. 박력 넘치는 만화로 다시 태어난 이야기가 쾌감과 절망을 한층 증폭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