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시대, 철학이 하는 일
누가 뭐래도 최첨단 과학의 시대다. 3나노 공정의 반도체가 곧 나온다는 미시 세계의 뉴스가 전해지는가 하면, 제임스웹 망원경 뉴스는 수백 광년의 우주를 논한다. 이렇게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철학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자인 김동희 박사는 그렇지 않고 말한다. 철학자들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사유가 없었다면 현대과학이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철학자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이해하고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소중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철학자들 역시 세상을 이해하려 치열하게 노력했고, 그 덕분에 세상을 새롭게 바꿀 수 있었다. 이런 철학자들의 시선과 노력을 따라가다가 관찰과 실험이 발달한 덕분에 ‘과학’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렇듯 고대그리스 철학자부터 현대입자물리 과학자들까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려 노력했는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시선도 바뀌게 되고, 자연스럽게 결국 우리의 삶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이데아부터 힉스까지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관점으로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이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이상적인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세상이 ‘목적’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세상을 정교하게 구성했다. 이 세상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기독교 세계관과 맞아떨어져 한동안 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때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설들이 실험과 관찰의 결과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성의 혁명을 일으켰다. 게다가 데카르트는 신앙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우리 이성으로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로서는 혁신이었다. 실험에 근거한 이성의 올바른 사용은 뉴턴의 혁명적 물리학으로 완수됐다. 칸트는 철학도 뉴턴의 물리학처럼 증명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철학이 할 수 있는 한계를 규정했다.
한편 정적이었던 칸트 철학에 헤겔은 변화하는 세상을 추가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시대정신’과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편 뉴턴의 물리학은 자연을 설명하는 면에서 만능이 아니었다. 20세기 들어 밝혀진 자연의 세계는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 변화한다는 상대성원리로 뉴턴이 빠트린 자연의 법칙을 메웠다. 하지만 그 역시 죽는 순간까지 확률로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는 면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세상의 진리를 오직 수학과 최첨단의 장비로 무장한 실험실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자연의 물질을 이루는 소립자들이 상호작용한다는 현대입자물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그 옛날 플라톤의 기본 생각과 많이 닮아 있다.
세상이치는 결국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