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국보 포니부터 첨단모빌리티까지
한국車 대도약 마중물 ‘이대리 노트’의 주인공
우리나라 첫 자동차 분야 국가과학기술유공자
이충구 前현대차 CTO의 생생한 세계무대 도전기
중장년 세대에게는 혈기왕성했던 시절의 추억을, 젊은이들에게는 역사로만 알았던 우리나라의 놀라운 산업 발전사를 되새기게 한 현대자동차의 특별전 ‘포니의 시간’이 많은 화제 속에 지난 8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현대자동차의 헤리티지가 시작된 포니는 우리나라의 첫 고유 모델이라는 타이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어온 한국인들의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도전과 혁신,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동시에 첫 국산차 개발로부터 정확히 반세기만에 684만 대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글로벌 Top3에 올라선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Ad Astra Per Aspera(진흙탕을 헤치고 별까지). 가난, 전쟁, 분단, 보잘것없는 기술과 빈한한 천연자원까지, 가진 거라곤 결핍이 전부였던 대한민국의 자동차산업이 오늘날 거두고 있는 성공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문장은 없을 듯하다.”
- 이충구의 포니 오디세이 中
저자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게 된 우리나라의 역동적인 현대사와 그 원동력 중 하나였던 현대자동차의 좌충우돌 세계무대 도전기를 한 엔지니어의 성장기 속에 함께 담아내고 있다.
한국의 놀라운 경제 발전사에서도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꼽히는 포니 신화는 1960년대 말, 비만 오면 비포장도로가 진창으로 변하던 울산만 매립지의 한 공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서 고작 하루 두세 대의 외국산 자동차를 조립하던 소수의 엔지니어들은 고유모델 개발이란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안고 난생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유럽의 선진적인 자동차 문화 속에서 비로소 과학과 기술, 예술과 인문의 결정체인 자동차의 본질에 눈뜨게 된다.
“세계무대를 향한 한국 자동차의 첫 기항지가 독일, 미국, 일본이 아니라 조금은 생소했던 나라 이탈리아였던 것에 대해 두고두고 큰 행운이라 여기던 것도 이런 복합적인 매력들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이탈리아는 이를테면 잘 달궈진 프라이팬 같은 나라였다. 그 뜨거운 열정 위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기술, 학문, 사상, 예술이 융합되며 미학적으로 재창조되는 공간이라 여겨졌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가운데 밤마다 사전을 뒤적이며 어깨 너머 보고 배우기를 일 년여. 설계도 몇 장과 빼곡한 노트 한 권을 안고 부푼 가슴으로 귀향길에 오른 그들을 기다리는 건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고국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들의 잠재력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자동차 기술과 산업 환경에 서서히 기름을 부었다.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좌충우돌 속에서도 그들의 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가 탄생했고 스텔라, 포니 엑셀, 쏘나타, 그랜저, 엑센트, 아반떼, 에쿠스, 아토스, 싼타페가 뒤를 이었다. 그 사이 무명이나 다름없던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어느새 독일, 일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자동차 산업계의 빅네임으로 폭풍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자동차 분야 최초로 정부 선정 ‘대한민국 국가과학기술 유공자’(2019)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저자는 우리나라 자동차 연구개발의 산 증인 혹은 마에스트로라고도 일컬어진다. 무명에 가까웠던 국산차의 기술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공로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대한민국 100대 기술주역에도 선정된 바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저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과 무엇 하나 쉽게 만족 못하는 타고난 완벽주의 탓에 앞만 보고 달려온 엔지니어의 한 사람일 뿐이라 자신을 평가한다.
그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공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이를 꼽으려면 당연히 개인보다 기업,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정주영 회장, 그리고 이후에도 꾸준히 재능과 의지를 갖춘 엔지니어들이 한껏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리더들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신 또한 이런 공동체의 특별한 구심력 안에서 50년 넘게 한 눈을 팔지 않을 수 있었다며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하고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을 담담히 복기하고 있다.
“최근 내가 몸담았던 현대자동차의 후배들이 보여주고 있는 신선한 행보에 자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들이 선언한 포니 헤리티지가 옛 영광을 떠올리게 해서?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라 그들의 담대한 비전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목적 기반형 모빌리티, 도심항공 모빌리티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연결되는 미래 사회를 남들보다 한 발 앞서 펼쳐 보이겠다는 원대한 꿈이 젊은 청년세대의 표현마냥 내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선진국을 추격하던 벤치마킹의 역사를 넘어 앞장 서 길을 내는 퓨처마킹(Future Marking)의 시대로 향하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준비했다는 저자는 그간의 성공과 실패, 좌절과 극복에 대한 자신의 회고와 성찰이 산업현장의 후배들에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오랜 저성장 기조와 고착화되는 사회구조에 실망해 삶의 목표를 잃어가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작은 영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03년 길고 긴 자동차 여정의 첫 기항지였던 이탈리아를 다시 찾은 저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포니 쿠페의 복원 모델을 바라보며 숱한 모험을 거듭해온 한국 자동차 산업의 대항해가 비로소 한 매듭을 짓게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또 다른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직감하며 미지의 항로를 개척해 나갈 새로운 항해자들을 위해 자신이 평생을 간직해온 엔지니어의 나침반을 에필로그로 소개하고 있다.
“엔지니어의 첫 번째 덕목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 말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누구 앞에서나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어야 집단지성을 통해 문제 해결도 쉬워지고 사회 손실이 줄어든다. … 엔지니어의 마지막 결심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며 외로운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이 결국 누군가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을 깨닫고 보람을 느낄 때 진정한 한 사람의 행복한 엔지니어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