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지혜와 아픔, 애환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 방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작은 기록
우리말에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 있다. 함경도 지방에서 쓰는 방언인 해개먹음이와 달개먹음이를 보자. 해개먹음이와 달개먹음이는 《조선민답집》(유진태, 1932)에 실린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까막나라는 해와 달이 없어서 밤이고 낮이고 늘 깜깜했다. 그래서 까막나라의 왕은 해와 달이 모두 있는 이웃 나라가 샘나고 부러웠다. 어느 날 까막나라의 왕은 불개에게 해와 달을 물어오라고 명했다. 불개는 왕의 명을 받들어 해를 가져오려고 해를 덥석 물었다가 너무 뜨거워서 뱉어 버렸다.(일식이 일어난 것이다.) 불개는 다시 달을 가져오려고 달을 덥석 물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차가워서 뱉어 버렸다.(월식이 일어난 것이다.)
러시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마우재’에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나라가 힘을 잃어 살던 고향을 떠나 만주 벌판과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던 상처로 얼룩진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긴 말이다. 아직도 그곳에는 역사의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민족이 있다. 경운기를 뜻하는 ‘손잡이뜨락또르’에서는 우리 민족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이 방언은 중국의 조선족 언어사회에서 주로 쓰이며 ‘손잡이’와 ‘뜨락또르’가 결합된 말이다. ‘뜨락또르’는 러시아어 ‘трáкторный’의 북한식 표기로 트랙터를 뜻한다. 고유어와 러시아어를 결합해 중국 사회에서 적응하며 살아간 우리 겨레의 지혜가 느껴진다.
점점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방언들, 그만큼 풍부한 우리의 역사 문화, 삶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다. 방언들 중에서 훌륭한 방언들은 그 지역을 넘어 표준어로 살리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소중한 겨레말 방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길에 작은 기록이 되고자 저자는 지난 몇 개월 내내 방언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또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업을 계속했다.
방언은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자
지역문화를 가장 잘 읽어 낼 수 있는 핵심, 화합의 도구
어느 곳이나 각 지역이 갖는 특징이 있다. 바닷가 마을과 농촌 마을의 특징이 서로 다르고, 도심과 외곽 지역의 특징이 다르다. 그 지역의 기후나 교통 요건, 문화 등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지역만의 특징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방언이다. 방언에는 표준어에 미처 담지 못한 각 지역의 특성과 문화가 담겨 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이 쓰는 ‘떡쉬움이’에서는 그 지역의 특성을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어 온 유목 생활의 전통으로 말고기나 양고기로 만든 음식과 발효시킨 유제품을 주로 먹지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떡(빵)’이다. ‘빵’과 ‘발효’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쓰이기 시작했으므로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어휘 체계에는 없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빵’과 ‘발효하다’를 그들의 언어로 구현하고자 그와 가장 유사한 의미를 갖는 ‘떡’과 ‘쉬우다’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떡쉬움이’는 카자흐스탄의 유목 생활의 특성을 볼 수 있으면서 우리의 언어로 구현하려는 고려인들의 지혜까지 느껴지는 귀중한 방언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책에서 소개하는 ‘올개돌개길이’, ‘차물그릇이’, ‘소비돈이’와 같은 고려말을 보면 고려말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말에서는 명사에 특별한 의미가 없는 접사 ‘-이’를 자주 덧붙인다. 이역만리에서 우리의 겨레붙이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써 내려온 우리의 소중한 언어 유산인 것이다.
방언을 쓰는 사람은 투박한 사람이라거나 시골 사람이라고만 치부하는 것은 자신의 좁은 식견을 드러내는 행동일지 모른다. 그 지역의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방언은 서로를 아는 화합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가 촌스럽거나 투박하다고 생각하는 방언은 사실 우리의 정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는 그릇이자,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며 지역문화를 가장 잘 읽어 낼 수 있는 핵심이다. 이를 지키려는 수고로움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기차를 부르는 불술기부터 ‘빨리’의 뜻을 가진
북한 방언 톰발리까지, 겨레말 찾아 담기
이 책에서는 남북한, 중국, 중앙아시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겨레의 방언 47개를 담고 있다. 그 47개의 방언을 중심으로 연관되는 다른 지역의 방언, 조합 방식이나 뜻이 비슷한 방언도 소개해 책에 담긴 방언의 수는 1,000개가 넘는다. 지금은 많이 쓰지 않는 말들이라 낯설 수도 있지만, 방언의 의미와 그 말이 만들어진 배경을 읽다 보면 친숙해질 것이다. 그 방언이 쓰이는 문학 작품 속의 문장도 담고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같은 뜻의 방언이 지역마다 어떻게 불리는지 정리해 그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각 방언에 얽힌 저자의 어릴 적 동네에서의 추억과 이야기도 읽는 재미가 있다. 꾀복쟁이 친구들과 뛰놀던 그 시절 친구들의 이야기에서 방언의 말맛을 흠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방언을 그저 하위 언어체계로만 보고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방언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뛰어난 표현력을 갖고 있는지 보여 주는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표준어의 그늘에 가려 사라지는 우리말이 너무나 많다. ‘간푸쟁이’, ‘불술기’, ‘톰발리’라는 방언 하나하나가 사라지는 일은 단순히 말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의 정서와 감정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 겨레의 역사가 잊히는 것이며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문화가 없는 사회는 뿌리가 없는 것과 같으며, 문화는 한순간에 쌓을 수 없는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전해오는 그 사회의 가장 강력한 저력이다. 우리 문화의 저력을 보존하고 살리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