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오로지 사랑만을 주제로 쓴 비극 작품이 바로 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하지만 이 비극에서는 비극의 침울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불타는 청춘의 정열과 아름다운 서정(抒情)만이 넘쳐흐르고 있다.
두 사람의 비극은 불행한 인연으로 시작되지만 그 불행은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순화(純化)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수지간인 두 명문 출신의 젊은이 로미오와 줄리엣은 무도회에서 첫눈에 그만 숙명적인 사랑에 빠져 신부 로렌스의 도움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지만, 양가 친척 간에 벌어진 칼부림에 휘말린 로미오가 베로나에서 추방당함으로써 그 사랑도 일순간, 가슴 아픈 이별을 고하게 된다.
한편 아무 사정도 모르는 부모로부터 파리스 백작과의 결혼을 강요당한 줄리엣은 로렌스 신부의 지혜를 빌어 마취약을 먹고 죽음을 가장, 매장 후 마취에서 깨어나 로미오와 함께 도망갈 면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의 질투인지, 계획의 사소한 차질로 줄리엣의 가사(假死) 상태를 정말로 착각한 로미오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음독자살한다. 그 순간 눈을 뜬 줄리엣은 모든 진상을 알아차리고 단검으로 가슴을 찌름으로써 로미오의 뒤를 따른다.
고전적 연애 비극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격렬한 사랑의 황홀감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비통함을 아름답게 그려 낸 시적(詩的)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남쪽 하늘의 봄 내음, 나이팅게일의 구슬픈 울음 소리, 장미꽃 같은 풍부한 열정 등을 이 작품에서 감득(感得)할 수 있는 것도 크나큰 기쁨이라 하겠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격렬하여 그 깊이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지만 특히 무도회에서의 첫 대면, 발코니에서의 고백 장면, 하룻밤의 사랑, 이별 장면은 감미롭고도 서정적인 그리고 감동적인 언어로 그려져 있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무겁고 침울한 비극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을 시적이고 명쾌한 아름다움이 담긴 특이한 비극 작품이 되게 한 요인은, 이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재기발랄한 언어 구사다. 특히 줄리엣 유모의 산문적 요설(饒舌)과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의 시적 요설과의 대조 및 그들을 중심으로 한 명랑한 음담패설, 로렌스 신부의 특이한 성격, 작품 전체에 넘치는 놀랄 만한 활기, 눈부신 언어의 홍수, 비유적 표현의 다양한 구사 등은 이 작품을 더욱더 빛내 주고 있다.
비록 비극적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의 우주요 현실이요 우상이었다. 한쪽이 없는 세상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허상에 불과하고 허무하기 짝이없는 꿈이었던 것이다. 상대방에게서 자기 자신을 찾고 상대방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최고 경지, 사랑에 있어서 이보다 더 황홀하고 드높은 경지를 어디서 또 찾아볼 수 있을까.
- 옮 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