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공정함’이 무엇인지 알고
공정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리고 공정함의 반대말은 정말 ‘불공정함’이 맞는가?
오늘날 우리는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공정한 경기를 원한다’, ‘결과와 과정 모두 공정해야 한다’와 같은 말을 자주 하며, 최근에는 현실 속에서도 미디어에서도 그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또한 ‘공정성’에 대해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는 우리는 정작 공정성이 무엇인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혹은 막연히 드는 ‘불쾌한 감정’을 불공정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욱 문제다. 공정성에 감정이 깊게 개입되어 있다면 누군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감정’을 이용해 손쉽게 자신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정’의 문제에 대해 오랜 세월 천착해 온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통해 우리가 늘상 사용하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공정의 개념에 대해, 또 우리 시대에 공정이 왜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인문, 역사, 철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짚어본다.
공정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으로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이 있다. 사회를 풍요롭게 하면 공정한 몫으로 보상받아야 하고 사회에 피해를 주면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 자신이 누리는 부를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 그 부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안정된 사회가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회 계약이다. 협상과 합의의 정도가 천차만별로 해석될 수 있지만, 공정성의 중심인 ‘절차’가 악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유연성과 포용력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제는 절차가 악용되고 있고 자본주의는 공정성이라는 토대를 잃었다.
- p.35 「공정성의 종말?」 중에서
저자는 인간들이 겪고 있는 무의식적 절차가 ‘경쟁과 협력 사이의 균형’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공정’이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인류의 시작부터 오늘날로 이어지는 역사와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차근차근 논의를 전개해 간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경쟁’과 ‘협력’은 현생 인류에게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으며, 따라서 역사 속에 깊이 새겨져 있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법’과 ‘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여러 가지 시스템이 있지만 그에 앞서 우리에게는 ‘공정함’이라는 공동의 합의가 있기에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공정함을 일찍 채택했던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집단의 규모를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공정성의 문제들이 파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공정함은 때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 탄탄한 자료와 배경지식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 이슈를 취재하며 40여 개국을 누빈 저널리스트로서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관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현시대에 가장 적절한 책이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화두로서의 ‘공정’을 다시 만날 것을 추천하는 이유다.
공정성의 문제에 포퓰리즘이 쉽게 달라붙는 이유
현시대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궁극의 답변으로서의 공정성을 흥미롭게 파헤치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특히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거대한 인간 마을의 지혜로부터 이득을 얻을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신 군중 심리를 제공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파벌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상호 적대감을 가지고 흥분하게 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위한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요즘엔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라는 부채질 기능 덕분에 상호 적대감이 마치 관중이 지켜보는 스포츠처럼 되어 버렸다. 깨끗하고 좋은 물이 흐를 때는 더러운 찌꺼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분열을 일으키는 데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이 이제는 소셜 미디어의 쉽게 격해지는 분위기를 이용해 목적을 이룬다. 지금 인터넷은 엄청난 소동들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 p.37~38 「공정성의 종말?」 중에서
저자인 벤 펜턴의 미덕은 정치적 논쟁에 버금가는 가장 민감하고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누구보다 침착하게 균형 있는 논지를 잃지 않으며 ‘공정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명한 저널리스트답게 최근 그 문제점이 더욱 부각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와 이것이 가져온 인류의 돌이킬 수 없는 후퇴에 대해서도 공정성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지적한다.
SNS가 다양해지고 전파 속도가 빨라진 요즘, 사람들은 쉽게 선동 당할 수 있고 그만큼 쉽게 격분할 수 있다. 거기에 가장 좋은 주제로 ‘공정성’이 엮이고, 일부 불순한 의도로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는 소식을 전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통로지만 악용하기 좋은 매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콘텐츠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공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휘둘리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서양에서 공정성 훼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징후 중 하나는, 정치 세력의 정상적인 기능을 향한 분노였다. 놀랄 것도 없이 정치인들은 금융 위기와 그 후유증이 자신들의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의 ‘포퓰리스트(populist)’ 리더들은 자신이 정치인이 되었을 때, 유토피아를 가져오는 데 계속 실패하는 경우 다른 사람들을 탓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이 ‘민중의 적’은 장소와 시기에 따라 다양하다.
- p.324~325 「공정성과 민주주의」 중에서
수 세기 동안 인류는 역사적으로 전쟁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견제와 균형’이라고 부르는 개념들을 발달시켜 왔다. 그 결과, 현대 민주주의는 선거와 국민 투표로 일종의 ‘리더’들을 뽑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뽑힌 리더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공동 사업체를 관리할 ‘권한’을 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리더들이 권한을 가지고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공정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먼저 ‘공격’하는 대상이 만약 자신의 권력에 제약을 가하는 것들이라면, 이는 불공정의 시작이 아닐까?
국가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면, 이들이 어리석거나 파괴적인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조언하고 제지할 수도 있는 비정치적인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공정하다. 공정한 사회에서 우리는 권한을 위임할 필요성은 인정해야 하지만, 권한을 버릴 필요는 없다. 권력 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대표들이 자신들에게 투표한 사람들과 자신들을 위해, 규범을 깨고 건물을 파괴할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통치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위임은 절대적인 위임이 아니라 미묘한 위임이어야 한다.
- p.326 「공정성과 민주주의」 중에서
그래서 저자는 강조한다. 국민 투표는 분명 장점이 있는 제도지만, 공정성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예/아니오’로 대답해야 하는 질문에는 균형적이거나 공정한 게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의사’를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뉘앙스도 없다. 포퓰리스트들이 ‘잡담’을 퍼뜨리고 ‘갈라치기’를 하면서 국민을 은근슬쩍 조종하려고 하는 행동에도 공정함이 없다. 따라서 저자는, 당신이 처한 복잡한 상황이나 문제에 간단한 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공정이 사라진 시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궁극의 지침서
벤 펜턴은 책에서 공정한(fair), 공정성(fairness)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fair’라는 단어의 동의어가 없기 때문이다. ‘공정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많은 책을 살펴보면, 작가들이 공정이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의’, ‘공평’, ‘형평성’ 등이 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서로 바꿔 쓸 수 없다. 왜냐하면, 공정은 오로지 공정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바꾸거나 대체할 수 없는 단어이자 개념이다. 물론 공정을 한 마디로 딱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정의해 보려고 노력은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것의 의미는 상호 간 경쟁뿐만 아니라 협력하는(그리고 같이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다른 집단에 그들이 틀렸다고(또는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공정성을 고취하는 방법은 불공정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공통된 의견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를 가장 달라지게 하는 행동은 언쟁 대신 이념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 p.345 「공정성과 타인」 중에서
그렇다. 우리는 공통된 의견에 도달하기 위해 ‘듣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쪽의 주장만 내세워서 될 일이 아니다. 물리적인 힘과 권력을 휘둘러 강압적으로 상대를 누르는 일은 결국 불공정에 대한 반발로 다시 무너지게 될 뿐이다. 따라서 벤 펜턴은 우리가 타고난 감각인 ‘공정성’을 이용하면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지 몇 차례로 그칠 일이 아니라, 무엇이 공정하고 공정하지 않은지, 더 나은 사회를 찾기 위한 균형을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항상 공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이란 무엇인가』의 1부에서는 공정성이 어디에서 나왔고,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한지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 2부에서는 스포츠, 전쟁, 소셜 미디어, 비즈니스, 세금, 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공정성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당신이 공정하게 행동해 왔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도록 만들어 준다. 나아가,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인간관계 등 사회 전반에서 과연 공정한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페어플레이(Fair Play)’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게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길이며,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다. 우리는 대체 왜 공정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싶다면 책을 읽으면 된다. 앞으로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이고, 또한 스스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