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만 가구에서 수신료 24억 원 미납, 이사진과 사장의 연이은 해임.
이동관 방통위 아래 창사 50주년을 맞은 KBS,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편파적이고 방만하다’는 프레임, 시민의 무관심 속에 KBS가 죽어가고 있다.
《KBS 죽이기》는 힘 잃은 공영 방송에 대한 냉정한 직시를 통해 뜨거운 제언을 던진다.
정권이 바뀌면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KBS는 변하고 있다. ‘어째서’라는 물음조차 의미 없게 느껴질 정도로 속전속결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수신료 분리 징수와 이사장 및 사장 해임 결정은 ‘KBS는 정권과 함께하는 방송’이라는 통념을 무력하게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창사 50주년 이래 KBS에는 지금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공영 방송과 수신료 문제가 주목받는 지금 출간된 《KBS 죽이기》는 현 상황에 대한 논의와 동시에 공영 방송이라는 제도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공영 방송 제도를 연구해 온 저자들은 공영 방송에 관한 법 제도와 KBS 경영 현실을 밀도 있게 파고든다. 그러나 법적 정의도, 현실적 규범력도 부재한 현재의 공영 방송 제도는 텅 빈 허울뿐이다. 시민의 어떤 편익을 위한 방송이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논의하고 제도화를 시도한 적이 없다. 제도의 목적부터 허술하니 그 작동 방식이 불완전함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거버넌스와 재원 마련 과정에 있어서 정치와 엮이거나 유연성이 떨어지는 KBS는 수신료를 내고 싶지 않고 정치에 휘둘려도 전혀 상관없는, 시민들의 외면을 받는 방송으로 전락한다.
공영 방송은 폐기할 수 없다. OTT와 유튜브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주류가 된 미디어 환경에서도 KBS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청점유율 산정 결과 KBS는 13년 동안 변함없이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시사저널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KBS는 최근 2년 연속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선정됐다. KBS는 각종 디바이스와 인터넷 콘텐츠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나에게는 수많은 채널 중의 하나겠지만, 장애인과 노인, 다문화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채널이다.
폐기할 수 없다면 고쳐 써야 한다. 공영 방송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제도를 바로 세울 때 가장 중심에 서는 주체는 정치권력도 시장도 아닌 시민이다. 수신료를 내는 주체이자 공영 방송의 편성 및 콘텐츠를 누리는 시민은 최대의 이해관계자이다. 우리가 공영 방송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시민은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KBS가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어떻게 재원을 확보할 것이며, 어떻게 책임을 지는지 시민은 직접 감시하고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위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위기는 비극이 된다. 지금 KBS에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공영 방송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시민에 복무하는 새로운 지향점을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 공영 방송의 모든 이야기와 권력은 시청자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