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귀찮은 것들 전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정답보다는 이해를 요구하는 따뜻하고도 잔인한 단편들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는 현란한 추리의 스킬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답을 요구하는 추리/미스터리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사건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심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정답보다는 이해를 요구한다. 물론 사건의 진상 자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상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고,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이야기, 한숨을 자아내는 안타까운 이야기 등을 버무려 추리/미스터리 소설에 거리감을 느끼던 사람들도 선뜻 가까이할 수 있는 무게가 완성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복권을 내 복권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래! 강명훈만 사라지면 되는 문제였다. 강명훈만 사라지면 그 누구도 내가 당첨된 로토 1등 번호가 강명훈의 로토 번호라는 걸 알 리 없었다. 강명훈이 어딘가에 적어놓은 로토 복권 번호가 가족들이나 형사들에게 발견된다고 해도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실종되면 내가 그의 로토 복권을 탈취했다고 주장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내가 로토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숨기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복권에 당첨된 사실조차 알기 어려울 것이다.
_P.32
내가 죽으면 효재는 누가 돌봐줄까, 시댁 식구들과 현우는 못 믿겠고 효민에게 효재를 맡겨야 하나, 근심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다. 나중에 효민의 예비 시댁이 중증 자폐아인 동생을 문제 삼지나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래서 인서는 결심했다. 평생 행복하게 지내다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면 효재와 함께 죽으리라.
_P.114
“웃어? 골이 비었냐? 지금 상황이 웃겨?”
“어, 그렇게 말해도 돼요?”
“뭐?”
“만에 하나 내가 살인범이면 어쩌려고?”
그러자 과장이 입을 다물었고, 대리도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오직 팀장만이 차가운 표정으로 신입을 쳐다봤다.
“야, 장난이 좀 심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 그래야겠냐?”
“장난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솔직히 전 살인범은 아닌데, 이 중에 누가 살인범이건 간에 썩 마음에 듭니다.”
“너 진짜 미쳤어?”
_P.137
잔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잔잔하고, 감동적이면서도 인류애를 떨어뜨리는 끔찍함을 동시에 간직한 소설이 읽고 싶다면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를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 지친 여러분에게 가볍게 시작하기 좋은 추리 소설이 될 것이다.
“탐정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추리/미스터리 장르의 생명력을 느끼다
소설가이자 한국추리작가협회장 한이는 “언젠가 탐정 소설도 끝에 이를 때가 올 가능성이 확실히 있어 보인다”라고 했던 도로시 L. 세이어즈의 말을 인용하여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를 이렇게 평가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 시기는 오지 않은 모양이다. 앤솔러지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에 실린 작품들에서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미스터리 장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단순히 트릭을 파헤치고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는 것만이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본질은 아니다.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가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하나의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