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나 치료제만 제때 공급받았더라면 잃지 않아도 되었을 목숨이
전 세계에서 매년 수없이 스러진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유행은 2023년 5월 5일 세계보건기구가 국제 공중보건 비상상태 해제를 선언한 이후에도 현재까지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낳고 있다. 2023년 8월 5일 현재 감염사례가 약 6억 9,000만 건을 넘었고, 사망자수도 69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국제사회는 저소득 국가들이 재정적 이유 등으로 백신을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감염병혁신연합(CEPI),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세계보건기구 및 유니세프를 주축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세계 공동 분배 프로젝트]를 만들어 저소득 국가들에게도 최소한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수의 백신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패했다. 애초 의사결정 과정에 저소득 국가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은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강대국들이 재원조달에 소극적이었고 무엇보다 자국 인구의 5~10배나 되는 백신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백신 민족주의(vaccine apartheid)’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백신의 지적재산권 문제도 획기적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결국 저소득 국가의 백신접종률은 1.1%에 불과했다(2021년 7월 기준). 결과적으로 빈곤 국가의 국민들은 적절한 백신의 분배가 이루어졌을 경우 피할 수 있었던 고통을 더 많이 받고 죽어야 했다. _역자 후기 중에서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이러한 불균형을 한 번에 해결할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며 개선하고 진보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책이 그 노력에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효과적이며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약품에 안전하고 손쉽게 접근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보건의료체계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이다. 선진국이라도 보건의료체계는 끊임없이 개선과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사회기반시설이 미비한 지역이나 의약품을 공급해도 이를 환자에게 전달할 의료 인력이 없는 지역도 있을 수 있다. 가짜 약이 범람하여 저렴한 약은 도리어 도태되고 유명 약의 복제품이나 가짜 약이 팔리는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낙태에 대한 터부로 안전한 임신중절약 허가가 나지 않는 곳이나 여성이 에이즈예방을 위한 약품을 사용하면 콘돔 사용을 줄여서 도리어 위험해질 지도 모른다는 기우도 있다. 이는 모두 이 책의 사례 연구에 언급된 일들이다.
현장에서 직접 마주할 현실은 과학과 이론만으로 풀어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국의 상황에 맞추어 시도했던 사양한 사례에서 미래의 개혁가들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의약품 부문 정책 개발 도구와 정책 개입 방법을 실제 사례를 통해 배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의약품 부문이 영리 목적의 시장이며 민간 활동 영역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국민 건강에 중요한 공공정책의 영역이라고 본다. 정부와 제약회사, 소비자와 의약계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가는 데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한 일에 틀림없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약품 부문 개혁을 위한 플래그십 틀은 개혁을 시작하고 목표를 정하고 문제점을 찾고 해결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유무형의 비용과 기대되는 정책 효과를 면밀히 파악해 형평성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정치와 윤리를 바탕에 두고 실천하고 검증하고 반성하고 다음 개선을 위한 순환구조를 제공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다섯 가지 정책 개입방법을 제시하는데, 정부재정, 의약품 비용 부담, 관련 조직, 규제, 마지막으로 설득의 다섯 가지 영역을 파악하고 조절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