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관점으로, 사건의 전말 없이 폭력 피해를 이야기하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 선정적인 성폭력 사례를 접하곤 한다. 보도는 보통 범행 동기나 사건의 잔혹함 등 가해자의 서사 위주로 구성된다. 피해자 보호 차원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것보다 가해자에게 분노하는 것이 더 손쉬운 정의 옹호 방법인 탓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성폭력 이후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폭력이 한 인간의,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뒤바꿔 놓는지 모두가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 이해로부터 우리는 주변의 피해자들이 보내는 신호를 포착하거나,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고통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피해자의 관점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년, 펠릭스를 만들어 냈다.
작가는 여러 가지 섬세한 묘사를 통해 펠릭스가 느끼는 복잡한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 낸다. 펠릭스는 성폭력을 겪은 후 ‘괴물’에게 시달리기 시작한다. 이 괴물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펠릭스의 주변에 도사린다. 그러다 바닥 타일 틈새로 기어 나오기도 하고, 전화기에서 튀어나와 펠릭스를 덮치기도 하고, 수많은 다리로 목을 조르기도 한다. 형태를 바꾸며 등장하는 괴물들이 바로 펠릭스가 느끼는 감정의 형상화다. 소설에서 자주 드러나는 또 하나의 묘사는, 개수를 세는 행동이다. 펠릭스는 폭력을 경험한 직후에도 울거나 화내지 않는다. 평소처럼 버스에 탑승하고, 평소와 달리 버스 손잡이를 센다. 그 이후로 펠릭스는 괴물에게 잠식당할 것 같을 때마다 집착적으로 길에 깔린 돌을 세고, 숲의 나무를 센다. 이런 펠릭스의 행동들이, 슬프다거나 화가 난다는 식의 직접적인 표현보다 더 그의 감정을 강렬히 드러낸다. 작가는 쭉 그런 방식을 사용해 조심스럽고 세심히, 청소년에게 적합한 언어로 피해자의 관점에 접근한다. 결국 펠릭스가 고통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며 긍정적인 감정에 마음을 내주기 시작할 때, 작가의 진정성 있는 공감으로부터 오는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내면과 그의 주변 세계를 조화롭게 조명하다
소설은 서술자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별개로 중간중간 펠릭스 주인공 시점의 서술이 끼어들기도 한다. 이런 독특한 구성을 통해 작가는 서술자와 주인공을 분리함으로써 피해자의 당사자성을 강조하면서도 당사자와 그를 둘러싼 세계 간의 관계에 독자가 주목할 수 있도록 한다. 또 객관적 서술 사이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펠릭스의 목소리는 불시에 튀어나오는 펠릭스 내면의 괴물, 즉 부정적인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게 펠릭스의 감정, 그리고 그와 맞닿은 주변의 세계를 인식하며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생생한 인물들을 여럿 만나 볼 수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이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들과 감추고 있는 비밀들은 펠릭스의 생각과 감정과 잘 얽히고 자연스럽게 굴러 나간다. 펠릭스는 폭력의 기억 때문에 친구들 간의 로맨스를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비밀을 캐내려고 든다는 의심으로 인해 친구에게 돌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평소와 다르게 자연스럽지 않은, 무례하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며 혼자서만 고통을 간직한다. 그랬던 펠릭스지만, 그가 마침내 피해 사실을 꺼내 놓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펠릭스에게 믿음을 표한다. 여기서 작가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엿보인다. 폭력의 경험은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가능한 모든 도움과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놓쳤던 신호는 없는지, 피해자의 주변을 잘 지키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더 깊이 공감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