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학·서정의 마르지 않는 샘물
공자는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하였고(≪논어論語≫ 〈계씨季氏〉), 시를 외우기만 하고 정치·외교에 활용할 줄 모르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논어≫ 〈자로子路〉). 또 그 나라에 들어가서 그들의 풍속을 살펴보았을 때 말이 온화하고 성품이 너그러우면 그것은 시의 교육 효과라고 하였다(≪예기禮記≫ 〈경해經解〉). 공자의 말은 시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매개체이며, 올바른 심성을 함양하는 교육적 효과가 있음을 의미한다.
≪시경≫에는 남녀 간의 애정, 노동의 아름다움, 부역에 나가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 전쟁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심정, 포학한 정사에 시달려 원망하고 분노하는 시 등 다양한 주제의 민간시가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귀족들의 제사나 종묘에서 연주하는 시가도 포함되어 있다. 풍부한 자료를 통해 중국 고대사회의 풍속과 정서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으며, 나아가 오늘날의 상황에도 투영하여 인류 공통의 정서와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시경학詩經學의 새로운 시야 확보
신라 중기의 것으로 알려진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 시를 학습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설총薛聰이 구경九經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경≫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매우 오래 전이라 추정된다. 퇴계 이황이나 성호 이익 등의 학자들도 ≪시경≫을 깊이 연구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도 많이 인용된 것을 보면, ≪시경≫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시되었던 전적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송대宋代 이후 주자朱子의 ≪시집전詩集傳≫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 시경학도 ≪시집전≫ 위주로 획일화되었다. 전통문화연구회에서 총 15책으로 완역할 예정인 ≪모시정의≫는 모형과 정현, 그리고 공영달의 견해를 반영하여 ≪시경≫ 해석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아울러 다양한 전적典籍과 주소注疏가 인용되어 있어 고전적 연구에 훌륭한 자료를 제공한다. ≪시경≫에 대한 다각적 접근이 바로 이 책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역주譯註 모시정의 8≫, 주周나라 유왕幽王을 풍자하다
≪역주 모시정의 8≫은 수십 년간 고전번역에 종사한 번역 전문가와 연구자, 원로 한학자가 팀을 꾸려 협동연구번역으로 완성한 책이다. 권12-2 〈시월지교十月之交〉에서부터 권13-1 〈소명小明〉까지 총 15편의 시를 모형毛亨의 전傳, 정현鄭玄의 전箋, 공영달孔穎達의 소疏를 포함하여 빠짐없이 수록하였다. 각 시편을 약해略解하면 다음과 같다.
〈시월지교十月之交〉는 해와 달의 흉조를 빗대어 권력을 장악한 신하를 풍자하였고, 〈우무정雨無正〉은 주周나라가 괴멸되고 군신이 흩어져 왕의 정교政敎가 바르지 못함을 비유하였으며, 〈소민小旻〉은 왕의 정사가 삿되고 치우쳐 어진 이를 임용하지 못함을 풍자하였다.
〈소완小宛〉은 유왕幽王의 재주가 보잘것없는 작은 새와 같음을 비유하였고, 〈소반小弁〉은 참소로 쫓겨난 태자太子 의구宜咎를 위해 스승이 지은 시이다. 〈교언巧言〉은 왕정王政의 혼란함을 비유하였고, 〈하인사何人斯〉는 소공蘇公이 왕의 경사卿士로서 자신을 참소한 포공暴公과 절교한 시이다. 〈항백巷伯〉은 임금의 시인寺人이 참소가 횡행하는 조정을 안타깝게 여긴 시이다.
〈곡풍谷風〉은 붕우朋友의 도道가 끊어짐을 읊었고, 〈육아蓼莪〉는 백성들이 부역賦役에 수고로워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함을 읊었으며, 〈대동大東〉은 과중한 부역과 세금의 해로움을 노래하였다. 〈사월四月〉은 고위 관리의 탐욕으로 일어난 소국小國의 재앙을 비유하였고, 〈북산北山〉은 부역이 공평하지 못함을 괴로워한 시이다. 〈무장대거無將大車〉는 대부大夫가 소인小人과 함께 일한 것을 후회한 시이며, 〈소명小明〉은 대부가 난세亂世에 벼슬한 것을 후회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