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우리 미래에 닿게 될 크리처
사실 크리처나 몬스터의 외형에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없다. 어떻게 그려야 할지 참고할 해답이 없으므로 무엇 하나 손을 대기 어렵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무엇이든 그릴 수 있고 또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만든 크리처에 다양한 설정을 입혀 세계관을 구축할 수도 있다. 예컨대 환경 오염으로 인해 꺾인 나무뿌리에서 자란 몬스터라든지, 오래전 지구상에 살던 공룡이 복원되면서 태어난 돌연변이 크리처라든지, 트랜스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인간이 진화해 발생한 종족이라든지. 이렇게 넘쳐 보이는 설정도 전혀 과하지 않다. 오히려 ‘그럴 법’하게 다가온다. 크리처 드로잉의 이러한 면모는 한계 없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상상하는 일에는 끝이 없다. 크리처를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그때를 상상해 보는 건 꽤 멋지고 즐거운 일이다. 크리처 디자이너의 시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크리처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맞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수백 점의 레퍼런스를 통해 우리의 미래, 클이처의 탄생을 상상해 보자.
▲서로 다른 그림체의 레퍼런스를 통해 나에게 딱 맞는 스타일 찾기
어떤 디자이너는 크리처를 그릴 때 흥미로운 형태, 움직임, 자세에 집중한다. 어설픈 움직임이 디자인을 망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완벽한 역동성만이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고는 한다. 또 어떤 디자이너는 크리처를 그릴 때 해부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체는 생명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라는 진리가 이들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그렇다면 두 의견 중 크리처 디자인에서 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디자이너의 말을 들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이다. 어떤 디자인 분야에는 정답이 있어서, 꼭 그렇게 따라가야 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크리처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실제로 존재할 법한 생동감을 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피부의 질감으로 인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이질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각 디자이너가 가진 특성들은 서로 다른 모습의 크리처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똑같이 공룡이 모티프인 그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부학을 중점으로 디자인한 그림과 움직임을 중점으로 디자인한 그림은 그 모습와 텍스처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을 때, 나름대로 크리처의 생태계를 구축해보고 싶을 때. 막막하거나 막연할 때 프로의 다양한 의견을 참고해 수렴하는 것은 디자인적인 성장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는 방식부터 도구까지,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챙기는 세심한 팁
이를테면 샤프펜슬과 다 닳아버린 뭉툭한 연필의 차이다. 샤프펜슬은 세세한 부분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반면, 닳아 없어져 뭉툭하고 두꺼운 연필심은 머리를 비우고 투박하게 밑그림 작업을 하기에 알맞다. 좋은 볼펜이나 마카도 많지만, 왜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지 생각해 보면 좀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다. 연필은 주제와 아이디어의 빠른 탐색이 가능하고, 다른 도구 없이도 섬세하게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섞어 크리처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 크리처이므로, 크리처의 모습뿐 아니라 표현 방식 역시 조금 더 새로워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맨날 그리던 도구 말고,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일은 우리 일러스트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다. 작업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기법을 실험하는 것 역시 실험정신이 투철한 크리처 디자이너가 도전해야 할 몫이다. 그동안 그려왔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이전 방식과는 다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이 책의 작업 도구 캡션을 소화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