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 딸 하나의 엄마,
29년차 교사인 김지혜 선생님이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예체능에 진심을 다하는 이유
“지옥이 무서운 이유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데 있다면
나는 영원히 끝없는 일에 도전함으로써
그 두려움을 떨쳐낼 힘을 내볼 것이다.”
학교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면서 배움을 연습하는 곳이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이 교사로서의 삶이 끝나는 순간이라 생각하는 저자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좋은 삶의 태도를 말로 가르치기는 어렵지만 교사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줄 수는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배우지 않은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기에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꾸준히 수련하고 있으며, 어린 시절에 멀어졌던 음악가의 꿈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교사가 학생의 삶을 지속해야만 학생의 눈높이에서 가르칠 수 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저자는 그러한 자신의 교육적 신념을 동료나 후배 교사들에게 교훈적으로 말하려 하기보다는 매일의 일상을 그려 보임으로써 진솔하게 전한다.
책의 구성은 바이올린 소나타의 형식을 빌려 전체 4악장으로 구성하고 빠르기 표시로 각 장의 분위기를 나타냈다. 1악장 ‘매일, 조금씩, 나아가기 위하여’에는 저자가 자기 성장을 위해 꾸준히 해온 읽고 쓰는 일, 뜨개질, 바이올린 연습, 태권도 등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스물아홉 살에 방과후 교실에서 시작한 바이올린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굴욕의 순간들과 중년의 나이에 도전한 태권도 수련 과정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흥미를 자아낸다. 치열한 배움의 과정을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악기 고르기, 태권도장 알아보기, 음악학교 진학 등 관한 팁을 깨알같이 담아 독자를 예체능의 세계로 구체적으로 유혹한다. 활발한 느낌이지만 빠르기 표시는 ‘아다지오’로 정해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2악장 ‘추억이 나의 길을 따라 자란다’는 저자가 과거의 기억을 차분히 더듬어보는 챕터이다. 흘러간 시간 속의 사건들은 되돌릴 수도 수정할 수도 없지만 돌아보는 시점에 따라 감정도 의미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의미 부여는 저자 자신이 지금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어머니와 딸들의 가계도를 짚어보는 것, 지금의 자신을 형성한 사람들의 영향을 기억하는 것, 사라지지 않는 예술에 대한 열망의 궤적을 조심스레 그려보는 저자의 글쓰기는 놓쳐버린 일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도 자기 변화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나침반을 집요하게 따르고 있다. ‘조금 빠르게’라는 뜻의 ‘Allegretto’가 붙은 3악장 ‘거울처럼 등대처럼’은 학생의 시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학교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29년이라는 시간을 교사로 살아온, 그야말로 평생 학교에서 살아온 저자의 학교에 대한 생각이 모여 있는 장이다. 교사의 체벌이 당연했던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좌충우돌 실수 연발이던 초임시절을 지나, 도심에서 학교가 사라지고 학교의 교육적 상황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겪은 학교의 변화를 되짚어보며 학교의 미래를 걱정한다. 학교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기도 하고, 등대이기도 하다. 사회의 부조리와 개인들의 욕망이 실시간으로 투영되는 곳이자 학교를 떠난 사람들 각자의 기억과 그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학교는 바람 잘 날 없는 문제적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에게도 학교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도 학교에 있는 동안은 매순간 아이들의 북극성 같은 존재로 빛을 비추어주겠다는 굳건한 마음을 새겨놓았다. 4악장 ‘변치 않는 마음으로 새로워지기’는 ‘비바체"라는 빠르기 표시를 달았다. 여행과 라이프스타일 등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이 장에서 저자는 세상의 빠른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자기중심을 굳건히 잡고 서 있는 단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보다 변화와 성장을 갈구하지만 자기만의 속도와 리듬을 지켜가는, 활기차지만 조급하지 않은 건강한 저자의 발걸음을 느끼며 즐겁게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이 모여 있다. 각 장의 빠르기 표시는 하이든 교향곡 〈시계〉의 빠르기 구성과 우연인듯 운명인듯 일치한다. 우리 삶의 시계는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저자처럼 우리가 각자 살아온 지금까지의 시간을 차분히 그려보고, 우리의 심장박동을 뛰게 만든 것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것들고 함께해온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어본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시간이 보다 활기차고 긍정적인 리듬으로 박동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