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장애인이 등장하는 그림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중 제법 알려진 여덟 편의 명화를 선별하였다: 1. 리에페링스의 〈성 세바스티안의 묘지를 찾은 순례자들〉, 2. 브뢰헬의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의 우화〉, 3. 엘 그레코의 〈맹인을 치유하는 그리스도〉, 4.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무리요의 〈베데스다 못의 그리스도〉, 6. 고야의 〈정신병원의 뜰〉, 7. 프리드리히의 〈교회가 있는 겨울풍경〉, 8. 밀레이의 〈눈먼 소녀〉. 이 그림들에는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왜소증 장애인, 정신 장애인이 등장한다.
이 책은 장애인 역시 미술의 대상이 될 수 있을뿐더러 장애인 또한 미술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 오늘날과 같은 장애의식이 없던 이전 시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림 속 장애인은 이미 그 존재만으로도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화가 자신 내지 화가 당시의 시대 의식을 담고 있다. 장애는 장애인만 아니라 모든 인생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주제이고, 또한 미학적 주제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장애인이 있다. 장애는 인생의 일부이자 사회의 일상적인 현실이다. 따라서 그림에 장애인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장애미술은 비장애중심의 획일적인 미의 이념과 기준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그 존재만으로 이미 존귀하며 충분히 아름답다. 장애인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향유하고 나눌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옛날 장애인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사회적 구조와 인식과 관습은 장애인을 소외하고 차별하였다. 장애인이 아름다운 이상을 추구하였지만 현실의 제약은 그 뜻을 실현시키기는 어려웠다. 마음대로 가고자 하되 장벽이 많았고, 자유로이 살고자 하되 오히려 가두었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되 종속되었고, 꿈을 펼치고자 하되 먹고 사는 생계에 매여야 했다.
그림 속 장애인은 계속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림 속 나의 모습은 아름다운가요? 나는 과연 인생을 잘 산 것일까요? 장애도 아름다울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장애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거기는 어떤가요? 21세기는 장애인이 살기에 좀 나아졌나요? 장애와 함께, 아니 장애 너머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가능할까요? 도대체 장애란 무엇일까요? 장애가 나에게나 이웃에게 그리고 사회에 유익한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