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 시대를 뛰어넘는 정치다운 정치
과연 유교는 폐기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일 뿐인가.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구성원들의 삶의 근간으로 기능했음에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연고주의, 수직적 위계질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잉태한 주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율곡 이이의《동호문답》에 담긴 민(民) 중심의 현실 개혁 논의는 유교에 대한 이러한 세간의 편견에 이의를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동호(東湖)에서 묻고 대답함’이란 의미를 가진《동호문답》은 율곡이 선조 2년, 그의 나이 34세 때 지은 책으로서 왕위에 오른 지 만 2년여 밖에 안 된 새 군주 선조에게 새 정치에 대한 열망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담아 제출한 정치 개혁서다. 율곡은 이 책에서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유교의 보편 명제에 대한 확신 아래 왕도정치에 대한 선조의 입지(立志)를 촉구하고, 각종 제도와 정책의 개혁과 관리의 부정부패 근절, 곧 무실(務實)을 역설한다. 백성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로서 자신을 닦는 일〔수기(修己)〕과 백성을 다스리는 일〔치인(治人)〕의 조화를 제시하고, 이를 이루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이러한 율곡의 사상은 오늘날의 극단적 유교 폄하를 넘어 유교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수기와 치인의 유가 사상을 말하다
- 조선적 주자학의 완성, 수기치인(修己治人)
손님과 주인이 서로 문답을 주고받는 대화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율곡 주자학의 초기적 전모, 곧 성학론(군주론 혹은 성인론) · 수기학(윤리학) · 경세학(사회경제론)의 기본적인 성격을 모두 담고 있다.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에서 ① 군주의 길, ② 신하의 길, ③ 좋은 군주와 좋은 신하가 만나기 어려움, ④ 고려 때까지 도학이 행해지지 못한 이유, ⑤ 조선과 왕도정치 회복의 관계, ⑥ 금일의 시대 정세, ⑦ 무실(務實)이 수기(修己)의 요체, ⑧ 간인(姦人)의 판별이 용현(用賢)의 요체, ⑨ 안민정책, ⑩ 교육정책, ⑪ 정명(正名)을 실천할 것이라는 총 11개의 주제에 대한 율곡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11개 장은 크게 3부로 재배치할 수 있는데, 먼저 1부(1~3장)는 선조가 성군이 되어 진정한 치세를 이루겠다는 의욕을 갖도록 북돋우면서 그에 필요한 군주의 자세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부(4~6장)에서는 조선의 역대 정권의 성격과 현재의 정치 현실에 대해 점검하면서 선조로 하여금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성찰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3부(7~11장)는 당시 선조가 군주로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과 그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유교, 구시대의 폐물을 넘어
- 사람과 제도, 제도와 사람의 공존을 위한 율곡의 도덕
지금, 우리에게 유교는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가.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구시대 지식인들만의 사유, 과학 기술을 등한시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저해한 관념, 격변하는 정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사상 정도로 치부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을 가득 메운 율곡의 시대 인식과 구체적인 현실 개혁 논의는 유교가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고리타분한 사상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통치자의 자기 성찰과 각성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 고위공직자들의 끊임없는 부정부패에 일침을 가하고 있으며, 을사사화 주역들의 엄단을 촉구하는 모습은 광복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 과거사 청산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런 율곡의 모습은 우리에게 왜 유교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의 사유세계를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식의 유교 폄하가 아니라 유교가 현 시대에도 유효한 가르침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