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4일 ㈜ 하양인에서 출간하는 송선희 의
〈자유의 탄생〉
서문(序文)
해미국제성지에는 매일 11시에 미사가 있다.
성당 안에는 순교자(殉敎者)들의 온몸이 묶인 채 땅속에 묻힌 장면과 물웅덩이에 빠진 장면, 커다란 돌에 떨어지는 장면, 큰 나무에 상투가 묶여 매달려 있는 장면까지 네 개의 벽화가 걸려 있다.
처참한 모습은 바라볼수록 그냥 스쳐버릴 수가 없다.
평소에 나는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막연하고 암울하게 느껴지는 공포가 두려웠고, 행여라도 이런 고통이 닥칠까 하는 염려까지 파고들어 알아보고 싶지가 않았다. 때론 누군가가 나에게 “성녀 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순교자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얄밉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혼하고부터 불치병과 동행하며 얼룩진 운명 앞에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살았다.
40여 년의 투병 생활로 생사의 길목에서 죽음의 강도 몇 번 건넜는데, 그때마다 죽지 않고 이승에서 좀 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해미국제성지에 있는 네 개의 벽화가 나에겐 더욱 예사롭지 않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믿음이었기에 저런 죽음까지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가족들이 있는데 오열하는 통곡 소리 뒤로 하고 어떻게 죽어버릴 수 있었을까?
. 도대체 저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성지에 있는 벽화를 볼 때마다 그날의 통곡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듯해서 괴로웠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해미국제성지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 모르긴 해도 조선 시대에는 굶주림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열악한 환경이었다. 대지 위를 기어 다니는 숱한 고통 탓에 사는 것 자체가 고행이었기에, ‘죽으면 천국이 있다던데 거기나 가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죽음을 택하진 않았을까? 그리고는 순교자들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기엔 농촌 들녘은 환상이었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추억이 그립고 한가한 여유로움이좋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문(2014년)하셨던 해미국제성지 마을로 이사를 왔다. 들판 가득 넘치는 곡식들과 들풀이 자라는 하루하루는 새로웠다. 찬란한 태양 빛은 그대로 대지를 향했고, 서녘 하늘로 떨어지는 석양은 마을 전체를 붉은 장미색으로 물들였다. 참새들 재잘대는 소리가 아침잠을 깨우면 개구리 소리, 풀벌레 소리는 밤하늘의 달과 별을 이야기했다. 계절을 따라 수많은 생명은 잉태되어 열매 맺고 사라져갔다. 여름날 드넓게 펼쳐진 푸른 들판은 생명의 색채였고, 벼가 익은 황금 들녘은 생명의 양식이었다. 여린 모가 자라 탈곡하기까지 모든 벼농사는 기계가 사람 손을 대신했다. 흙을 감싸며 색채를 달리한 구름과 바람과 햇살과 비는 분주했다.
변화무쌍한 날씨 속 저항하는 대지에서 농부들은 겸손을 배웠고, 자연과 동화된 그들의 순수한 미소는 내가 숨 쉬고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알렸다. 힘이 들 때마다 그토록 애절하게 찾아도 침묵하신 창조주 하느님은 대자연 속에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얼굴로 선명하게 그냥 계셨다. 시골에서의 호기심은 1년을 살고 나니까 많이 사라져갔고 해미국제성지에 걸려 있는 벽화들에 자꾸만 다시 마음이 갔다.
순교자들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접한 순교자들 이야기는 나의 편협함과 무지를 완벽하게
일깨웠다. 그동안 순교자들의 믿음을 너무나 몰랐고 잘못 알고 있었다. 아니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거부만 했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흐릿한 정신이 깨어나게 하는 청량제 같았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 옛날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세계사에서는 유일하게 선교사도 없이 교회가 설립되고, 수많은 분이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치는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한국천주교회를 평신도 교회, 기적의 교회라고 부른다. 순교자들의 흔들리지 않는 순수한 믿음이 가슴 가득 파문을 일으켰다. 순교자를 그 시대만의 이야기, 그들만의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로만 여겼다. 심지어 《한국 천주교회사》 책을 접할 기회가 더러 있었으나 재미가 없어서 항상 뒷전으로 밀어두고 보지 않았다. 목숨 바쳐 순교하신 우리나라 신앙 선조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그분들의 경건한 믿음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한 분 한 분을 떠올릴 때마다 순교하기까지의 당당한 신앙인의 모습을 알아갈수록 존경스럽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을 처절하게 외치던 전설 같은 조선의 별들 이야기가 굴곡진 개개인의 삶으로 간단하게 그려질 것이다. 역사는 계속된 상호작용 속에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아보려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비추어 현재상황을 이해하고 보다 발전적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한국 천주교회사, 조선의 역사, 예수님의 수난 고통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어떤 점을 고뇌해야 하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원화된 가치가 공존하고 온갖 정보는 진실과 거짓이 서로 뒤엉켜 넘쳐난다. 모든 것 위에 물질 만능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경쟁에 밀리면 낙오자가 되고, 성실하게 일만 해선 경제적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혼돈의 세상이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하나로 묶여 과학기술, 경제, 사회문화, 외교, 의료, 국방이라는 방대한 영역에서의 각국의 안보가, 강대국을 중심으로 첨예하게 부딪히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터와도 같은 국제사회에는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정글의 법칙이 존재한다.
-----저자서문 중에서
류머티즘 관절염과 함께한 35년 인생 에세이 강물의 계절에 이은 송선희의 이번 책은 두 번째 출간이다.
갈라진 곳으로 빛이 들어와 마음이 열리는 순간!
살아 있음은 놀라움 그 자체
무엇보다 그의 자유의 탄생은 단순한 신앙을 코멘트하기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제안이고 존재 물음이기도 하다. 그는 ‘보다 따뜻하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철학’을 지닌 채‘우리 신앙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고 묻고 싶어 한다.
〈자유의 탄생〉의 출판사 하양인에서도 역시 인간 삶과 생명의 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온 주부이자 작가인 송선희의 이 질문에 함께 생각해보자고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주)하양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