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가진 것과 배운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세계를 향해 떠났던 철학자.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려는 용기와 이상에 대한 도전이 신화 속 영웅이나
역사 속 순례자의 몫만이 아님을 그는 그렇게 증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화가 휘몰아치기 몇 년 전, 한 젊은 사내가 세계 일주를 떠났다. 유럽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홍해를 지나 인도양으로, 실론과 인도, 파키스탄을 거쳐 동아시아로, 싱가포르와 홍콩을 찍고 중국과 일본을 여행한 뒤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횡단한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대 유행했던 유한 지식인의 흔한 그랜드 투어로 볼 수도 있는 이 세계 일주가 특별한 것은 저자가 철학을 공부한 이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돌아다닌 곳은 각국의 종교적 문화유산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이다.
《방랑하는 철학자》를 쓴 헤르만 폰 카이저링은 독일 귀족 집안의 자제로 본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철학을 공부했지만, 기독교를 위시한 서양 철학에는 자못 비판적인 대신 불교 철학과 힌두 철학 등 동양 철학에 꽤나 박식했으며 호의적이었다. 그는 실론과 인도의 불교 사원, 인도의 힌두 사원, 중국의 공자 사당, 일본의 불교 사찰 등 수천 년간 동양 세계를 지탱해온 철학의 현장을 찾아 그곳의 수도자와 현자, 주민과 사상가를 만나 때론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때론 그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며 대립과 공존, 불안과 혼돈으로 가득 찬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홀로 고민하고 고심했다.
카이저링이 세계 일주를 하던 1911~12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으로 마치 커질 때까지 커져 팽팽해진 풍선을 날카로운 바늘로 금세라도 찌를 것만 같았던 제국주의 열강 간의 다툼, 식민자와 피식민자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엄혹한 시기였다. 그 또한 러시아 제국 땅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독일계 혈통에 독일에서 공부한 바 있는 그 시기, 그 지역의 불안과 갈등을 온몸에 휘감고 있는 불안전한 인간이었다. 그는 전쟁의 발발을 예감이라도 한 것인지 유럽 땅을 등지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며 새로운 세계를 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번이라도 더 둘러보고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이야기해 보면서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이상을 좇았다. 그 이상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자라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을 지배하는 종교였고, 또 그로부터 자라나 열매로 여문 철학이었다.
철학자가 발 내딛는 곳마다 빚어낸 사색의 순간
세계 곳곳이 철학의 도야가 되었다!
세계 일주를 하는 카이저링이 철학자였다는 것 이상으로 다행이었다는 점은 그가 타자의 문화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고 나아가 호의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2천 년간 유럽을 지배해 온 기독교 문명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이었던 그는 힌두교와 불교, 유교와 동양의 전통 신앙에 대해서는 최대한 개방적이고 공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믿음과 삶을 가능한 한 존중해주려 노력했다. 물론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그들을 타자화하고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또 다른 편협함은 아니었다. 현지에서 만난 이들의 불합리함에 대해서는 질타를 하기도 하고, 신흥 종교 집단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존중과 이해라는 아주 빤하면서도 실제로는 가동되기 어려운 중용적 시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환경을 이해하고 철학적 사유를 여행 내내 지속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매일같이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배워갔다. 어찌 보면 참된 지식인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이런 카이저링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이 책 《방랑하는 철학자》는 그래서인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붕괴한 서구 지성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오로지 무지몽매한 야만인과 집 나간 철부지로만 취급했던 동양과 신대륙의 그들이 몰랐던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방랑하는 철학자》이 출간된 지 100년하고도 10년이 넘은 지금 이 순간,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작금의 세상은 1914년 이전과 그리 달라진 바 없다는 것은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라면 능히 알 것이다. 자신이 믿음만이 진리라며 다른 믿음을 가진 이들을 핍박하고 분노하는 모습,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기꺼이 남의 나라에 총칼을 겨누는 모습, 급격히 변하는 세계에 거부감을 둔 채 그저 옛것만을 되뇌는 모습 등 카이저링이 세계 일주 중에 몸소 겪었던 세계의 모순은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그런 세상에 맞서 철학으로서 세계를 이해하고 맞섰던 카이저링의 모습은 선지자의 모습으로 여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