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가 직접 쓴 자서전, 80여 년 만에 첫 번역
무용가 최승희의 자서전이 ‘한국의 아름다운 문장’ 시리즈 3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최승희, 나의 자서전』은 1936년에 『나의 자서전』(니혼쇼소(日本書荘), 도쿄) 초판이 출간된 이후 80여 년 만에 처음 번역 출간한 것입니다. 그이가 직접 쓴 자서전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은 출간된 후 한 번도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최승희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금기였습니다. 월북 예술가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남긴 작품은 1988년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대중에 공개할 수 없었습니다. 학술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월북 예술가의 이름 한 글자를 가리고 써야 할 정도로 그 이름조차 제대로 표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사이에 많은 자료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망실되거나 고의로 버려지고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종이쪼가리 하나조차도 불온한 것이라면 어떤 갖은 수모를 당할지 모르는 어두운 시대였으니까요.
해금 이후 비로소 최승희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몇 개의 평전이 출간되었지요. 그러나 정작 최승희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은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는 최승희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최승희의 도쿄판 『나의 자서전』은 여러모로 중요한 작품입니다. 시기상으로 보아 구미(歐美) 공연을 떠나기 전에 출간된 책이니 자서전치고는 이른 감이 있어도 반생기라는 점에서 볼 때 최승희의 탄생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동안 최승희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떠돌아다녔지만, 이 자서전을 통해 바로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승희가 경성에서 태어났다는 글은 『나의 자서전』에 밝혀져 있습니다. 이 책이 제대로 번역되었다면 최승희의 고향에 대한 혼란은 없었겠지요. 게다가 최승희의 남편 안막(安漠)의 이름이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이름에서 가져왔다는 잘못된 이야기는 지금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지만, 최승희는 자서전에서 이미 남편의 이름에 대한 사연을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최승희에 대해서 타인의 말로 이해해왔습니다. 그이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왔지요. 그래서 최승희가 직접 쓴 자서전을 번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80여 년만입니다.
젊은 소설가 권상혁의 초역으로 최승희의 살아온 내력을 비로소 읽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의 옛 일본어는 현대 일본인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번역자 권상혁은 이 책의 절반을 일본 현지에서 번역했습니다. 세세한 각주를 달아서 지금 읽어도 불편이 없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2부에는 자서전을 쓴 이후 구미와 중국 공연에 관한 최승희의 글을 처음 발굴해서 번역했습니다. 최승희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귀한 글이 될 것입니다.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녀온 이야기는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최승희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고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새로 발굴한 자료를 번역했습니다.
『최승희, 나의 자서전』은 어린 시절 겪게 된 고난과 새로운 무용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고 있습니다. 최승희가 어떻게 월반해서 진학하게 되었는지 그간 잘못 알려진 사실과 달리 당시의 학제 개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도 자서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기 하루 전날에 열린 첫 신작발표회가 극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드디어 자신이 열망하던 새로운 조선의 무용을 세상에 알리기까지 한 예술가의 성장과 고뇌가 담긴 잊을 수 없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비록 일본어로 출간된 책이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문장’ 시리즈로 번역 출간했습니다. 최승희는 조선의 춤을 새롭게 발견했고, 자신의 온몸으로 끝까지 조선의 춤을 추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이념에도 기울지 않았으며 오로지 홀로 외롭게 조선의 춤을 지켜낸 예술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