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반가운 책이 나왔다. 왜 우리말로 철학하지 않는가? 어째서 일본식 언어로 헤매고 있는가? 이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괘씸한 철학 번역〉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정밀한 언어 분석을 통해 관례로 굳어진 일본식 철학 번역어를 비판하면서, 그런 용어를 대체할 수 있는 평범한 한국어를 제안한다. 예컨대 ‘외연’이 아니라 ‘크기’, ‘내포’가 아니라 ‘세기’, ‘질료’가 아닌 ‘재료’, ‘전칭’이 아닌 ‘보편’, ‘정언’이 아닌 ‘무조건’이 우리말에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식 번역 탓에 감춰진 철학 개념의 진정한 의미를 밝힌다. 이런 풍부한 해설이 이 책의 강점이기도 하다.
인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막상 인문 고전을 직접 읽으려고 하면 지나치게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자서 고전을 읽지는 못하고, 다른 사람이 쉽게 해설해 준 책을 읽거나 유튜브 같은 콘텐츠에 의존한다. 수많은 오류와 오해가 인문 고전의 지혜를 가리고 있음에도, 독자들이 이런 문제를 비판하고 검증할 수는 없었다. 철학자들의 지혜를 스스로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랜 세월 퇴적된 식민지 유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사용된 필수 철학 용어를 분석해 나간다.
한국 독자들이 혼자 힘으로 고전을 읽지 못하는 까닭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한국어가 일본어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 실태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혼자 힘으로 인문학에 입문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서양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핵심이 되는 수십 개의 단어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 의미를 평범한 한국어로 풀어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묻는다. 어째서 한국어로 철학하지 않는가? 어째서 평범한 한국어에서 단어를 찾지 않는가? 어째서 철학자들은 식민 유산을 고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