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흙 이야기
이 지구에 흙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6억 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끼나 지의류 같은 생물들이 육지에 나타났을 무렵이지요. 흙은 육상 생물의 사체가 미생물 등에 의해 분해되어 생기는 유기물과, 암석이나 화산 분출물이 풍화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모래, 점토, 실트(모래와 점토의 중간 굵기의 흙)와 같은 무기 광물이 합쳐져서 만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생물이 나타나기 전에는 지구상에 흙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흙은 생물이라는 유기물의 세계와 광물이라는 무기물의 세계가 육지에서 만나는 경계선에서 서서히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이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뭇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덕분에 흙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흙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특히 점토는 벽돌이나 도자기, 연필심, 기저귀, 파운데이션과 같은 화장품, 의약품 등의 재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종이를 하얗게 만드는 데에도 점토가 사용되지요. 하지만 인간이 흙을 고맙게 쓰기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인간의 삶이 깊이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니까요. 이집트 문명과 나일강,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같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문명의 발상은 큰 강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강이 범람할 때 상류에서 떠내려온 흙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이것이 문명을 일구는 기반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상류에서 만들어진 흙 알갱이와 그 성분은 물의 흐름을 통해서 산지에서 평지로, 그리고 바다로 운반되어 강과 바다의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언뜻 보면 흙은 전혀 변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아주 빠르게 되감을 수 있다면, 이 지구상에서 흙이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규모 화산이 폭발하고,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며, 가끔 운석도 충돌합니다. 흙이 만들어지던 각각의 장소에서 이러한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그때까지 이어지던 흙의 형성 과정은 끝이 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새로운 흙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흙은 그러한 과정이 되풀이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흙은 그 장소의 역사가 가득 담긴 타임캡슐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흙은 생물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지만, 한번 잃으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나무를 대규모로 베어 내거나 해서 흙의 덮개가 되어 주는 식물이 없어지면, 민둥민둥 드러난 흙은 비바람에 쉽게 쓸려 갑니다. 거기서 흙이 다시 만들어지려면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 필요하지요.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흙이 만들어진 기나긴 시간을 상상해 보는 것은 우리의 삶 자체, 나아가 지구상에 살아가는 생물로서의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