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해지고 세상이 훈훈해지는 눈 맑은 동시들!
동심이 가득한 세계로 어린이들을 초대해 온 청개구리 출판사의 동시집 시리즈 〈시 읽는 어린이〉 140번째 도서 『꼭이요 꼭꼭』이 출간되었다. 2009년에 월간 『시사문단』 시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2017년 강원아동문학회 동시부문 신인작가상과 2019년 『아동문예』 동시부문 신인상을 연이어 수상한 권명은 시인의 첫 번째 동시집이다.
권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자신을 “늦게 피는 꽃”으로 비유하면서 “나만의 걸음걸이로 조금 늦게 가더라도 꿈을 향해 가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설사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많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걸로 만족”해 왔다고 고백한다. 추측하건대 권 시인은 오랜 시간이 걸려 시인이 되는 꿈을 이룬 듯하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괴로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 충분히 예상되지만, 시인의 말을 들으면 무척이나 긍정적이고 따뜻한 생각을 지닌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의 모나지 않고 듬직한 성품은 작품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엄마 심부름 못 들은 척하고
동생 약 올리고 놀리다
결국 동생하고 싸웠다
화가 많이 난 엄마한테
삼진 아웃당했다
누나 아끼는 손거울 깼다
깍쟁이 누나한테 혼나고
조심 안 했다 아빠한테 야단맞고
이번엔 병살타 제대로 쳤다
안 되겠다 내일은
엄마 아빠 누나 기쁘게 해 주고
홈런 한 방 멋지게 쳐야지!
-「야구광의 하루」전문
화자에게 오늘은 아주 엉망인 하루였다. 동생하고 싸우고, 엄마와 누나에게 혼나고, 아빠한테 야단까지 맞았으니 가족 모두가 싫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목처럼 ‘야구광’인 화자는 주눅 들어 있거나 가족을 미워하기보다 이 상황을 야구로 대입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비록 삼진 아웃 당했고, 병살타도 쳤지만 까짓것 내일은 “홈런 한 방 멋지게 쳐야지!” 하고 씩씩하게 웃어넘기는 것이다. 아이다운 천진하고 긍정적인 화자의 목소리는 읽는 독자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열이 나고 아픈 덕에 늘 술 먹는 아빠와 함께 병원에 손잡고 같이 오니 좋다고 말하는 아이(「더 좋다」), 농사를 지으며 자연이 주는 감사함을 느끼는 할머니와, 그러한 할머니의 고운 마음이 담긴 농산물을 고맙게 받는 아이와 가족들(「고맙지라」), 아무리 큰 눈사람이라도 며칠 지나면 녹듯이 눈덩이처럼 커진 소문은 곧 사라진다고 말하는 아이(「소문」), 가게도 없지만 잔뜩 쌓아 놓은 알을 가리키며 스스로를 알부자라고 칭하는 가난한 달걀 장수 아저씨(「알부자」) 역시 자신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하는 인물들이다. 작은 일에도 고마워할 줄 아는 이들의 겸허한 삶의 자세는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마당 가 닭장에서
아침이면 닭이 운다
꼬끼요 꼬꼬
꼭이요 꼭꼭
빨리 일어나요
꼭이요
늦잠 자면 안 돼요
꼭이요
뭐 십 분만 더 잔다고요?
그럼 딱 십 분 만이에요
꼭이요 꼭꼭
오늘은 정말
지각하면 안 돼요
꼭이요 꼭꼭
자꾸 다짐을 받는다
꼬끼요 꼬꼬
꼭이요 꼭꼭
-「꼭이요 꼭꼭」전문
많은 아이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를 힘들어한다. 5분만 더, 10분만 더 이부자리에 머무르고자 한다. 이렇게 이불 속에서 시간 끌기를 하는 아이들을 깨우는 건 시계의 기계음이거나 이제 그만 좀 일어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의 목소리다. 하지만 화자의 아침 풍경은 사뭇 다르다. 아침만 되면 닭들이 울어서 화자를 깨우기 때문이다. 오늘은 지각하면 안 된다면서 자꾸 다짐을 받듯이 “꼭이요 꼭꼭” 하며 우는 닭의 음성은 엄마처럼 무섭지 않고, 오히려 간곡하고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모닝콜을 들으며 아침을 맞는 시골 아이의 삶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흔히 닭의 울음소리를 “꼬끼요 꼬꼬”라고 획일적으로 표현하지만, 시인은 이 시에서 “꼭이요 꼭꼭”이라고 다르게 적는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이 시를 계속 읽다 보면 닭의 울음소리가 정말 그렇게 들리는 듯도 하다.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가 얼마나 우리의 감각을 풍부하게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시인 역시 그러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를 활용하여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곶감」은 곳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햇살과 바람만이 오가는 정적인 시간을 많은 의성어 의태어를 채워넣음으로써 동적인 장면으로 그려냈다. 「귀또르르 귀또르르」에서 시인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귀뚜르르’가 아닌 ‘귀또르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풀숲 옆을 걷다가 듣던 ‘귀뚜르르’ 소리는 멈춰 있는 정적인 소리지만 ‘귀또르르’가 되는 순간 “귀뚜라미가 굴리는 작은 굴렁쇠”가 되어 풀숲에서부터 구르기 시작해 화자인 ‘나’의 꿈속까지도 굴러온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마치 자유를 얻은 듯한 느낌이다. 의성어 하나 차이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시인의 감각이 놀랍다.
배정순 아동문학가는 “한 편 한 편 정성 가득한 동시로 동시집을 가득 채웠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동심의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새로운 표현을 담고자 애쓴 흔적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작품에는 따스한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언젠가는 꽃이 될 세상 모든 어린이들을 응원하는 시인의 마음이 독자들에게 닿길 바란다.